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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상의료 12조원 누가 낼 것인가

중앙선데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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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호 02면

버락 오바마 대통령이 건강보험을 개혁했지만, 진작부터 무상의료 혜택을 받고 있는 미국인도 있다. 노인(메디케어)과 저소득자, 장애인(메디케이드)들이다. 퇴역군인도 정부 소유 병원에서 공짜로 의료서비스를 받는다. 163개의 의료센터와 8만여 병상을 갖고 있는 거대 병원이다. 이처럼 어마어마한 시설인데도 병원은 진료 받으려는 퇴역군인들로 넘친다. 통상적인 진료를 받으려면 최소한 세 시간 기다려야 한다. 하루 종일 기다리는 사람도 많다. 전문의 진찰을 받으려면 두세 달은 족히 대기해야 한다.

김영욱의 경제세상

무상의료의 종주국인 영국도 마찬가지다. 진료 한 번 받으려면 12시간 이상 기다리는 경우가 허다하다. 수술이 잘못됐다거나 병원 복도에 방치된 환자들 사례도 자주 언론에 등장한다. 캐나다 역시 정형외과 전문의에게 진찰 받으려면 평균 6개월, 부인과는 3개월을 기다려야 한다. 부자들이 미국으로 건너가 진찰 받는 이유다. 의료 양극화를 없애긴커녕 더 심해졌다.

노벨 경제학상 수상자인 더글러스 노스(Douglass North) 교수가 쓴 『공공문제 경제학(The Economics of Public Issues)』 내용이다. 2003년 책이라 지금과는 다소 다를 순 있겠지만, 그렇다고 그가 전달하려는 메시지가 달라질 순 없다. “세상에 공짜는 없다”다. 의료비가 무료니 조금만 몸에 이상을 느껴도 병원으로 몰려든다. 환자가 넘치니 병원은 ‘선착순’으로 해결할 수밖에 없다. 돈을 내지 않는 대신, 대기 시간과 의료서비스의 질 저하라는 비용은 치러야 한다는 얘기다.

무상의료는 한국에도 있었다. 극빈층을 대상으로 하는 의료급여제도다. 치료비와 약값, 입원비 모두 공짜다. 그래서 생겨난 부작용이 의료 쇼핑이다. 하루 종일 병원과 약국만 돌아다니는 현상이다. 유시민 전 보건복지부 장관이 현직 시절 한 극빈자 사례를 들며 개탄했다.

“그는 늦잠 자고 일어나 시내로 간다. 대여섯 군데 병원을 돌며 간호사와 이야기하고 처방 받으면서 하루를 보낸 후 막차를 타고 집에 간다.” ‘그’가 2005년 한 해 동안 병원과 약국을 방문한 횟수는 2300번. 휴일도 없이 매일 6~7곳에서 진료를 받았다는 계산이다. 유 장관이 제도를 뜯어고친 이유다.

돈이 없어 치료를 못 받거나, 의료비 대느라 집안이 거덜나는 사례는 허다하다. 병원비에서 느끼는 국민의 공포는 그만큼 크고, 거기서 벗어나려는 꿈은 너무 간절하다. 무상의료는 이처럼 달콤한 유혹이다. 며칠 전 무상의료를 당론으로 채택한 민주당의 노림수는 이것일 게다. 지난 지방선거 때 무상급식 공약으로 크게 재미 본 전례도 있다. 득표력이나 파괴력으로 치면 무상의료는 무상급식에 댈 게 아니다. 이참에 무상급식, 무상보육, 무상의료의 ‘무상시리즈’로 나가면 집권할 수 있다고 판단했을 게다. 하지만 노스 말대로 세상에 공짜는 없다. 대기 시간이 길어지고 의료서비스는 형편없어진다. 의료서비스 강국의 꿈은 사라진다.

정말 심각한 문제는 재원 조달이다. 지금처럼 건강보험이 실제 의료비의 60% 정도만 부담해도 올해 건보 재정은 1조3000억원의 적자를 냈다. 내년에는 그동안 모아놓았던 적립금마저 완전히 바닥난다고 한다. 지금 내는 건보료가 많다는 불만도 상당하다. 이런 터에 무상의료를 할 막대한 돈은 대체 누가 댈까. 무상의료 주창자들은 1인당 건강보험료를 1만1000원 더 내면 된다고 한다. 그러면 기업과 정부도 더 내게 돼 있고, 이렇게 12조원만 추가로 더 모으면 가능하단다. 어처구니없는 주장이다. 일시적으로 가능할 수 있어도 오래 지속할 순 없다. 게다가 정부가 국민 세금을 더 거둬 지원해야 한다는 점에는 변함이 없다. 현 수준의 복지만 유지해도 조만간 그리스 꼴이 된다는 마당에. 하긴 자녀 세대가 장차 쓸 돈을 우리 세대가 미리 당겨쓴다면 못할 것도 없다. 정치인들도 투표권이 없는 다음 세대를 걱정할 이유가 없다. 나라는 망해도 정권만 장악하면 된다는 속셈이 아니라면 민주당은 당론을 접는 게 옳다. 무상의료는 지옥으로 가는 비단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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