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상털기’는 폭력

중앙선데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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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호 18면

‘집과 일터 곳곳에 양방향 텔레스크린과 마이크를 설치해 철저하게 국민을 감시한다. 동시에 정부 입장은 무조건 옳은 것이라고 홍보한다. 정치적 반대파의 사진을 비롯한 모든 정보를 삭제해 세상에 존재하지 않는 인간으로 만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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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지 오웰은 1949년 작 소설 1984년에서 오세아니아라는 나라를 이렇게 묘사했다. 스탈린이나 히틀러에서 소설의 영감을 얻었다고 한다. 하지만 이와 비슷한 일들이 지금도 북한 같은 독재국가에서 벌어지고 있고 영국, 미국, 유럽연합(EU) 국가에서도 관찰된다. 사방팔방을 한눈에 볼 수 있는 CCTV(폐쇄회로TV)의 존재가 한국만의 풍경은 아니다. 미국은 아예 국토안보부(DHS)·국가안전보장국(NSA)이 전화·e-메일·팩스·문자메시지, 심지어는 DNA 정보까지도 합법적으로 들춰볼 수 있다. 지난해 12월 20일 워싱턴 포스트는 ‘감시하는 미국’이라는 제목의 특집 기사를 게재하기도 했다.

우리나라의 미네르바 사건이나 영국 위키리크스의 재판, 중국의 결혼정보 공개를 둘러싼 논란도 이와 비슷한 맥락에서 이해할 수 있다. 해커들은 개인적 이득이 없어도 능력을 과시하기 위해 웹사이트를 들락거리며 해킹을 일삼는다. 현대사회에선 정보를 많이 가진 쪽이 상대방을 통제하거나 다스리며 때로는 위협한다. 정보통제에 대한 욕심은 권력에 대한 욕구와 맞닿아 있다고 할 수 있다.

요즘은 평범한 사람들도 쉽게 개인 정보를 빼내 유통시킨다. 이른바 ‘신상 털기’다. 휴대전화·몰래카메라 등으로 개인의 사생활을 찍은 동영상들이 인터넷을 유령처럼 떠돈다. 중국 문화혁명 때 지식인에게, 세계대전 후 프랑스에서 독일에 협조한 사람들에게 쏟아부은 언어폭력을 연상시킬 정도다. 잔인함이 묻어 있다. 특정 연예인의 학력·연애사 등 사적인 것에 의심을 품고 그 진실이 무엇인지를 밝히는 것에 집착하면서 자신의 열등감과 고립감을 보상받으려는 이들과 친일파, 상습적 고액 체납자, 성폭력범의 명단을 공개해 망신을 주자는 사람들의 입장은 그 의도와 의미가 아주 다르다. 하지만 무의식 속 움직임에는 비슷한 면도 없지 않다. 조선시대에도 ‘회술레’란 이름의 공개망신법이 있었다. 형리가 죄인의 상투를 잡고 북을 목에 건 다음 동네방네 북을 치고 다니게 했다. 일종의 사회적 살인이다. 그리스의 극작가 플라우투스(Plautus)는 “인간은 서로에게 늑대다(Homo Homini Lupus)”라고 했다. 집단의 선량함을 믿은 마르크스나 묵자를 제외하고, 대부분의 사상가들은 군중심리의 위험성을 경계했다. 일대일로 만날 때는 상대방을 비난하거나 화내는 정도로 끝나지만, 집단이 한 명을 목표로 공격하면 그 잔인함은 증폭된다. 그게 바로 군중심리다.

필자도 공공장소에서 무례한 이들을 만난, 불쾌한 경험이 적지 않아 ‘○○녀, ○○남’이라는 용어와 관련 기사가 뜰 때 은근히 속 시원함을 느낄 때가 있다. 모두가 모두를 감시하고 견제하는 사회가 더 잘 정돈되고, 시민정신이 더 투철해질 수도 있다. 일벌백계하는 장면을 보면서 스스로 도덕적으로 바뀔 수도 있다. 그러나 전후좌우를 따지지 않고 무차별적으로 개인정보를 빼 이를 악용하거나 특정인을 사회적으로 매장하는 방식은 아니어야 한다. 잘못은 법으로 다스리면 된다. 수많은 이가 달려들어 집단 안의 모자라는 누군가를 무차별하게 공격하는 행동은 동물의 세계에서도 좀처럼 볼 수 없는 기이한 현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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