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봇이 빼앗는 일자리

중앙선데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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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호 31면

미국 MIT의 데이비드 오토 교수가 미국 노동시장에서 지난 40여 년간 발생한 변화를 중심으로 작성해 8개월 전 발표한 보고서를 최근에야 볼 기회가 있었다. 그 내용은 매우 충격적이다. 요약하면 직업이 두 가지로 양극화되고 있다는 것이다. 하나는 높은 기술과 높은 연봉을 받는 직업, 다른 하나는 별다른 기술도 필요 없고 수입도 낮은 직업이다. 문제는 양극화에 가속도가 붙고 있다는 점이다. 그렇다면 그 중간의 직업들은 어디로 사라지고 있는가? 특히 일반 사무직과 제조업 기술자 등의 직업은 크게 줄어드는 양상이다.

미국의 실업률이 요즘 10%를 넘나들고 있는 가운데 기술·소득 측면에서 중간 수준의 직업들은 1930년대 대공황 시절보다 더 많이 없어지고 있다. 오바마 행정부는 경기 부양을 위해 엄청난 돈을 풀어 왔고, 미국 기업들의 실적 역시 좋아지고 있지만 이런 추세는 좀체 바뀌지 않고 있다. 그렇다면 노동시장에서 무언가 더욱 근본적인 문제가 있다는 얘기다. 이런 현상의 주범은 무엇일까? 데이비드 오토는 이런 미들클래스 직업이 사라지고 있는 원인으로 자동화의 지속적 확산을 꼽았다. 약간의 숙련노동이 필요했던 사람들의 기술을 기계·로봇·컴퓨터 등이 대체하고 있다는 것이다. 또한 사람(노동력)을 더 써야 하는 일의 상당 부분도 인터넷과 정보화 덕택에 아예 임금이 싼 외국으로 쉽게 아웃소싱하게 된 것도 하나의 이유라고 분석했다.

이런 변화는 제조업에만 국한된 게 아니다. 이미 자동화된 콜센터는 전 세계 어디에서든 만나볼 수 있다. 과거 일일이 고객을 응대해야 했던 콜센터 업무는 더 이상 인간 노동의 전유물이 아니다. ATM 기기 보급에 따라 은행에서 은행원들이 많이 필요하지 않은 것처럼. 그뿐인가. 점차 확산되고 있는 미국의 자동계산대는 이제 현금 수납 직원들의 일자리를 빼앗아 가고 있다. 가정과 개인용 로봇의 시대도 점차 현실화하고 있다. SF 소설에서만 나오던 이런 로봇들은 다양한 모습으로 이미 상용화되기 시작됐다. 실리콘밸리의 윌로 거라지라는 회사가 최근 내놓은 로봇의 경우 빨래를 접고 맥주를 가져오는 것과 같은 다소 복잡한 명령도 수행한다. 이 로봇이 더욱 놀라운 것은 오픈소스 플랫폼으로 다양한 하드웨어와 소프트웨어 기술을 용도에 따라 접목할 수 있다는 점이다. 아직은 가격이 비싸지만 대량생산을 하게 되면 생각보다 빠른 속도로 가격 인하가 가능할지 모른다. 이렇게 되면 가사 노동은 물론 간호·간병 인력처럼 고령화 사회에서 급증할 새로운 일자리도 로봇들이 차지할 것이다.

직업 양극화 현상이 지속되고 직업 재편성이 가속화한다면 우리의 교육체계나 사회 시스템에서도 근본적인 변화가 필요할 수 있다. 일부 소수의 전문 직업은 로봇이 대신할 수 없는 수준의 숙련된 기술이나 지식·경험을 필요로 한다. 하지만 그렇지 못한 사람들의 노동력에 대해 수요·공급이란 시장 논리에 따라 임금을 지불할 경우 로봇이 초래할 소득 감소는 감내하기 어려울지 모른다. 사회 전체적으론 불안정성이 커져 로봇 등장 이후 사회 시스템 파괴를 그려 냈던 사이버펑크 SF소설의 내용들이 상당 부분 현실로 옮겨질 수 있다.

그렇다고 인간이 로봇이나 자동화 시스템의 도입을 막을 수 있을까? 이런 시스템은 기본적으로 생산성의 증대를 담보하며 인류 전체적으로 봤을 땐 풍요로운 삶을 보장한다. 미래사회에선 생산에 기여하는 부분에 대해서만 가치의 방점을 찍지 않고, 보다 자연스럽게 나눔의 문화를 확산시킬 필요가 있다. 또 즐거움과 행복, 사람들의 만남을 중심으로 하는 새로운 사회적 가치의 평가와 분배 방식에 대한 근원적인 고민이 필요하다.



정지훈 한양대 의대 졸업 뒤 미국 남가주대에서 의공학 박사학위를 땄다. 하이컨셉&하이터치 블로그 운영자. 의학·사회과학·공학의 융합을 추구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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