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한부 삶 ‘호주의 박지성’ 큐얼 ‘조국의 명예 위해 나를 던진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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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8면

시한부 인생을 선고받은 한 축구 선수가 있다. 이유도 알 수 없고 치료 방법도 없는 ‘자가면역성 간염’이라는 진단을 받았다. 간세포를 공격하는 항체와 싸워야 하는 면역세포가 오히려 항체와 활성화돼 간세포가 파괴되는 만성질환이다. 의사는 그에게 5년, 길어야 10년밖에 살 수 없다고 했다.

 하지만 그에게는 축구라는 처방전이 있었다. 그는 축구 하나를 가슴에 품고 뛰었다. 2002년 시한부 인생을 통보받았음에도 9년간 그라운드를 누비고 있는 힘이다. ‘호주의 박지성’ 해리 큐얼(33·터키 갈라타사라이·사진) 이야기다.

 1996년 잉글랜드 리즈 유나이티드에서 프로에 데뷔한 큐얼은 잘생긴 외모와 화려한 왼발 기술로 유럽에 센세이션을 일으켰다. 그는 2부 리그에 머물던 리즈 유나이티드를 1999~2000시즌 프리미어리그 3위, 유럽축구연맹(UEFA)컵 4강으로 이끌어 호주 축구의 영웅으로 떠올랐다. 2003년에는 명가 리버풀로 이적하며 그의 인기에는 가속이 붙었다.

 하지만 이후 그는 주위의 기대만큼 성장하지 못했다. 그 이유는 지난해에야 뒤늦게 알려졌다. 큐얼이 자가면역성 간염과 싸우고 있다는 사실이 세상에 공개된 것이다. 그동안 큐얼의 병을 숨겼던 호주축구협회는 “완치는 불가능하다. 큐얼의 몸은 점점 망가지고 있다. 하지만 그는 조국의 명예를 위해 자신을 희생했다. 너무나 존경스럽다”고 밝혔다. 큐얼은 “생명에는 한계가 있지만 호주 대표로 뛰는 꿈은 계속 실현하고 싶다”며 아시안컵 출전에 흔쾌히 응했다.

 8일 새벽(한국시간) 개막한 아시안컵에서 호주는 14일 한국과 조별리그 2차전을 치른다. 6일 카타르에서 만난 큐얼은 “한국은 박지성을 중심으로 잘 뭉쳐 있는 강팀이다. 호주와 한국의 대결이 기대된다. 매우 흥미로울 것”이라고 말했다. 환하게 웃는 그의 표정에서 시한부 인생은 전혀 느껴지지 않았다. 바로 축구의 힘이었다.

도하=김종력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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