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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에게 대학이란 무엇인가?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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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5면

마동훈
고려대 미디어학부 교수

해마다 이즈음이면 대학 입시가 우리 일상의 중요한 한 부분이 된다. 2008년 현재 우리나라 대학진학률은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국가 중 가장 높은 58%를 기록하고 있다. 한 집 건너 한 명씩 대입 수험생이 있거나, 혹은 가까운 친지 중 누군가는 몇 년 안에 대학 입시를 치른다는 이야기다. 누구네 집의 자녀가 어느 대학에 들어갔나 하는 것은 인사치레를 위해 매우 중요한 정보다. 대학이 국민들에게 가장 많은 사랑을 받는 계절도 다름 아닌 입시 시즌이다. 논술시험 날 자녀를 데리고 학교에 와 건물을 바로 보는 학부모들의 표정에는 대학에 대한 흠모의 빛조차 역력하다.

 그러나 원하는 대학에의 입학만 중요한 관심사일 뿐이다. OECD 회원국 중 4위 수준의 고비용 민간 교육비를 부담하면서도 자녀들을 보내는 대학에서 과연 어떤 교육이 이루어지고 있는지, 어떤 교육이 이루어져야 하는지에 대한 관심은 그리 크지 않은 것 같다. 대학이 소중한 자녀들과 우리 사회에 과연 무엇인가라는 질문에 앞서 일단 진입 장벽을 넘고 보자는 생각이다. 고등교육의 실체보다는 그 열기에 사로잡혀 살아온 우리 국민들에게 어찌 보면 당연한 일이다.

 대학이란 무엇이며 대학 강단에서 무엇을 가르쳐야 하고, 또한 학생들은 대학에서 무엇을 배워 나가야 하는지에 대한 고민에서 필자도 자유롭지 않다. 정답이 없는 논술시험 문제를 주고 학생들에게 자유롭게 답하도록 하는 실험을 꽤 오랜 기간 시도해 봤다. 자신의 학기 중 프로젝트 주제도 주어진 범위 안에서 스스로 결정해 공부하게 했다. 대학원 학위 논문의 주제도 학생들 스스로 정하게 했다. 그러다 보니 학생들의 불만도 좀 있고, 강의평가 결과도 신통치 않다. 제 학기에 졸업하는 대학원생은 거의 없다. 배운 것을 정리하고 암기하는 데에는 익숙하지만, 자신의 이야기를 주도적으로 전개하는 데는 미숙하고 경험도 없기 때문이다. 그래도 이러한 실험적 시도에 대한 학생들의 적응도가 조금씩 높아지고 있음은 고무적이다.

 필자는 대학의 교육이 작금의 중·고등학교 교육 현장에 모종의 방향성을 제시하고 이를 앞서서 끌어가는 추동력을 가져야 한다고 생각한다. 지금의 대중교육 성격의 대학 교육으로는 뭔가 성이 차지 않는다. 유럽 중세 고전교육 시대의 트리비움(Trivium) 교육 체제에서는 우리의 초등학교에 해당하는 12세 이하의 아이들을 문법(grammar) 공부에 주력하게 했다. 여기에는 고전 언어 문법뿐 아니라 사회의 역사, 제도, 철학, 과학, 기술, 예술과 관련된 다양한 정보와 사실들이 모두 포함된다. 우리의 중·고등학생에 해당하는 13~17세에는 논리(logic)를 공부한다. 이미 습득한 정보와 사실들을 연계해 각 분야에서 나름대로의 설명 체계를 구성하는 연습을 한다. 18세 이상의 고등교육 과정은 한 단계 높은 수사(rhetoric)의 단계로 해당 분야에서 작은 창의적 지식을 스스로 만들어 내는 훈련을 한다. 스스로의 문제의식과 독자적인 목소리를 바탕으로 만들어진 창의적 지식은 급속하게 변화하는 과학기술, 조직운용, 사회제도, 나아가서는 인간상에 대한 실용적 대안으로 미래 사회에 기여하게 된다. 유럽의 근대는 이러한 탄탄한 교육제도를 뒷받침으로 이루어졌다.

 대학은 기업이 원하는 맞춤형 인재를 배출해야 한다는 점에 있어서도 좀 설명이 필요하다. 고비용 인재양성기관인 대학이 기업에서 채용 즉시 활용할 수 있는 기능인을 교육하는 하청공장이어서는 안 되며 그럴 필요도 없다고 본다. 대학 교육의 격은 분명히 그 이상이어야 한다. 대학은 기업이 장기적인 관점에서 필요로 하는 세상을 바꾸는 혁신적 사고를 훈련하는 교육장이어야 한다. 대학이 미래 사회와 산업의 큰 그림을 볼 줄 알고 또한 이를 그려낼 줄 아는 창의적 인재를 배출할 때 우리 기업에도 미래가 있다.

 제도권 중·고등학교 교육과 국가, 사회, 기업의 현실 사이에 놓인 대학 교육은 과연 무엇이어야 하는가에 대해 대학 안과 밖의 치열한 고민이 절실하다. 대학은 객관식 문제 몇 개 더 맞힌 아이들을 얼마나 많이 확보하는가 하는 경쟁보다는 중·고등학교 교육과 사회, 기업 모두에 강한 충격을 줄 수 있는 창의적 교육과정과 프로그램의 개발 경쟁에 진력해야 한다. 정부와 기업은 대학이 미래형 지식생산 능력을 갖춘 인재양성에 충실할 수 있도록 전적으로 믿고 뜨겁게 후원해 주고 또 기다려 주는 깊은 이해와 협력이 필요하다. 우리 대학들이 겨울 한 철 입학 시즌뿐만 아니고 일 년 내내 국민 모두의 사랑을 받을 수 있기를 소망한다.

마동훈 고려대 미디어학부 교수

◆ 약력 : 고려대 신문방송학과, 영국 리즈대 커뮤니케이션학 박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