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삶의 향기

소,‘상품’과 ‘가족’사이

중앙일보

입력

업데이트

지면보기

종합 29면

김기택
시인

방역 담당 직원은 안락사를 허락해 달라고 무릎을 꿇고 사정하고 농부는 눈물로 억울함을 호소하다 결국 죽음을 앞둔 소들에게 마지막으로 고급 사료를 먹였다고 한다. 방역 담당 직원도 주사를 놓으며 구토를 하고 눈물을 흘렸다고 한다.

 순한 눈을 감으며 쓰러지는 소들과 그것을 바라보는 농부들의 눈물 속으로 김종삼의 시 ‘묵화’가 겹쳐진다. “물 먹는 소 목덜미에/ 할머니의 손이 얹혀졌다./ 이 하루도/ 함께 지났다고,/ 서로 발잔등이 부었다고,/ 서로 적막하다고.” 하루 종일 힘들게 일하고 탈진한 소의 목구멍으로 물이 들어가고, 할머니의 손이 그 목에 닿을 때, 체온과 연민과 속 깊은 정도 손바닥을 통해 할머니의 온몸을 휘감으며 지나갔으리라. 고단한 삶과 위안을 나누는 사이에 소와 식구가 어찌 다르랴.

 윤석중의 동시 ‘소’도 떠오른다. “아무리 배가 고파도/ 느릿느릿 먹는 소// 비가 쏟아질 때도/ 느릿느릿 걷는 소”. 소의 눈이 빠른 속도와 범람하는 말 속에 사는 우리를 느림과 침묵으로 쳐다보고 있는 것 같다. 사람보다 훨씬 더 부조리하고 억압된 조건에서 살면서도 소는 급한 것도 없고 말도 없다. 소가 되새김질하는 걸 보면 음식과 함께 제 마음의 슬픔이나 스트레스까지 꼭꼭 씹어 양분으로 만드는 게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든다.

 그러나 지금은 대량생산 대량소비의 사회다. 소비자는 현대화된 유통망을 통해 소의 성장 과정과 도축 과정이 보이지 않는 상품을 구매한다. 농부들은 체계적인 관리와 규모의 경제를 통해 품질과 가격 경쟁력을 갖춰야 수입육과 경쟁할 수 있다. 구제역은 이런 생산과 소비 환경이 낳은 재앙이다. 죽음을 앞둔 소 앞에서 울며 고급사료를 먹이고 소의 이름을 일일이 부르며 먹이를 주는 농심을 보면, 우리 농부들은 몸은 대량생산 대량소비 사회에 살고 있지만 마음은 여전히 소를 가족처럼 대하던 옛 농촌에 있는 것 같다.

 경쟁력을 하루 빨리 갖춰 축산물 수입 개방과 구제역 파동 같은 위기에서도 살아남아야 하는 현실에서 소를 가족처럼 대하는 농심은 이제 거추장스러운 것일지 모른다. 손실을 줄이고 마음의 상처를 덜 받으려면 농부들도 이제 소를 가족이 아니라 공장에서 찍어내는 공산품처럼 취급하는 게 현명할지 모른다. 과학적이고 경제적인 마인드를 더 철저하게 갖춰 수익성과 안전성을 확보하는 노력도 필요할 것이다. 그러나 그 대가로 농부가 도시근로자처럼 바뀌고 소박한 노동의 행복이 생존을 위한 고역으로 전락한다면 어찌할 것인가. “얼룩백이 황소가 해설피 금빛 게으른 울음을 우는 곳”(정지용 ‘향수’)이 사라진다면 어디서 삶에 지친 마음을 씻을 것인가. 농촌도 살리면서 우리의 정서도 잃지 않는 지혜는 없을까?

 죽어가는 소들의 맑은 눈을 떠올려 본다. “소의 커다란 눈은 무언가 말하고 있는 듯한데/ 나에겐 알아들을 수 있는 귀가 없다.” (졸시 ‘소’)

김기택 시인

 ◆약력 : 1957년생. 89년 한국일보 신춘문예로 등단. 미당문학상·김수영문학상·현대문학상 등 수상. 시집 『태아의 잠』 『사무원』 『소』 등.