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자로 보는 세상] 一毛不拔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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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9면

전국시대 사상가 양주(楊朱)는 노자(老子)·장자(庄子)와 함께 도가 철학을 대표하는 인물이다. 그는 특히 묵자(墨子)의 겸애(兼愛)·상리(相利) 주장을 통렬하게 비판하기도 했다. 어느 날 묵자의 제자 금활리(禽滑厘)가 양주에게 물었다. “선생님의 털 하나를 뽑아 세상을 구할 수 있다면 털을 뽑겠습니까?” 양주는 “어찌 털 하나로 천하를 구할 수 있단 말인가”라며 고개를 가로저었다. ‘터럭 하나도 뽑을 수 없다(一毛不拔)’는 뜻이었다. 훗날 맹자(孟子)가 이를 비판하여 말하길 “털 하나로 세상을 구할 수 있음에도 터럭 하나 뽑지 않겠다는 양자의 주장은 자기만을 위한 것(爲我)”이라고 했다. 이기주의라는 얘기다.

 ‘세상을 구할 수 있다고 해도 나는 털을 뽑지 않겠다’는 뜻의 ‘일모불발(一毛不拔)’에 담긴 고사(故事)다. 일모불발은 지금도 ‘극단적인 이기주의’를 상징하는 단어가 됐다. 애재여명(愛財如命), ‘재물 사랑하기를 내 목숨과 같이 한다’는 말과 통한다. 중국에서는 지금도 극히 인색한 사람을 일컬어 ‘철공계, 일모불발 (鐵公鷄,一毛不拔)’이라고 한다. ‘쇠로 만든 수탁(公鷄)’을 앞에 붙여 털을 뽑을 수 없음을 강조했다.

 그러나 이는 양주의 심오한 사상을 겉으로만 이해한 것일 뿐이라는 게 중국 샤먼(廈門)대 이중텐(易中天·역중천) 교수의 설명이다. ‘사회가 공공의 이익이라는 명목으로 개인의 희생을 강요할 수 없다’는 게 본 뜻이라는 지적이 었다. ‘개인의 희생 없이도 잘 다스려지는 사회’가 바로 양주가 갈구하는 세계였던 것이다. 이는 도가 사상의 핵심인 ‘다스림이 없는 다스림’, 즉 무위(無爲)사상으로 이어지게 된다.

 새해다. 정·재계 인사들은 무엇인가 하겠다며 각오를 다지고 있다. 온갖 4자성어를 동원해 정견을 발표하고, 경영방침을 펼친다. 뜻대로만 된다면야 세상은 편해질 듯싶다. 그러나 현실은 다르다. 그들의 의욕이 오히려 세상을 더 혼탁하게 만든다는 것을 우리는 늘 보아왔다. ‘무엇인가를 하지 않아도 잘 다스려지는 세상’을 꿈꿨던 도가 철학이 더 그리워지는 이유다. 노자의 『도덕경』 한 구절을 되새겨 본다.

“욕심을 끊고 고요함을 찾으면, 세상은 스스로 안정된다(無欲以靜, 天下將自定)!”

한우덕 중국연구소 차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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