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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좋은곡' 금지해온 방송사의 과민반응

중앙일보

입력

97년 발표 당시 '방송 부적합' 판정을 받은 윤도현 밴드의 노래 '이 땅에 살기 위하여' 가 2년만에 해금돼 방송을 타고있다.

박노해씨의 시를 가사로 한 이 노래는 수해 보상 시위를 벌이다 강제해산 당하는 고향(파주) 주민들을 보고 윤도현이 즉석에서 작곡한 것. "찬 시멘트 바닥에 스티로폴 깔고/가면 얼마나 가겠나 시작한 농성/삼백일 넘어 쉬어터진 몸부림에도/대답하나 없는 이 땅에 살기위하여… " 로 이어지는 시를 시원한 창법으로 불러 좋은 반응을 얻은 곡이다.

하지만 발표 얼마 후 방송3사는 "가사가 선동적" 이라며 일제히 부적격 판정을 내렸다. 그러나 문제의 가사는 역사의 한 페이지로 넘어간 80년대 노사갈등을 다룬 것으로, 90년대말 한국사회가 충분히 소화할 수 있는 수준이었다. 또 음악적 품질도 뛰어나 공연마다 앵콜 신청 1위에 올랐다. 애당초 부적격 판정을 받을 이유가 없는 노래였다.

방송3사는 이 노래를 2년만에 슬그머니 해금함으로써 그 판정의 부당함을 자인했다. 지난 6월 MBC의 6.10 기념방송을 필두로 9월 MBC-FM '별이 빛나는 밤에' , KBS '차태현의 FM 인기가요' , SBS '환경콘서트' 실황 등에서 연달아 노래를 방송한 것이다.

만인이 시청하는 공중파 방송에서 가요 심의는 불가피하다. 그러나 폭력.외설적 묘사가 아닌 가수들의 진지한 사회적 발언에 방송사가 과민하게 반응하는 건 우리 사회의 문화적 성숙도에 어울리지 않아보인다.

'이 땅에 살기 위하여' 의 2년만의 해금을 계기로 방송사 가요심의의 폭과 기준을 새롭게 설정해보면 어떨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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