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안문’ 주역 왕단 온다는데 … 홍콩 정부 고심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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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4면

왕단(左), 우얼카이시(右)

천안문 사태 재평가 운동을 이끌어왔던 홍콩의 ‘민주투사’ 씨토와(司徒華·사도화·79)의 장례식을 앞두고 홍콩 정부가 깊은 고민에 빠졌다. 1989년 천안문 사태 당시 학생들의 대표를 맡았던 쌍두마차 왕단(王丹)과 신장위구르 자치구 출신 우얼카이시(吾爾開希)가 홍콩을 방문해 29일로 예정된 씨토와의 장례식에 참석하겠다는 뜻을 밝혀왔기 때문이다. 이들은 현재 대만에 살고 있다. 씨토와는 천안문 사태 이후 지금까지 ‘중국의 애국주의적 민주화 운동을 지지하는 홍콩 연대(지련회·支聯會)’ 주석을 맡아 매년 6월 4일 홍콩섬 빅토리아 파크에서 열렸던 희생자 추모집회를 주도했다. 이런 씨 주석의 장례식에 천안문 사태의 주역들이 참석하겠다는 것이어서 여론의 관심도 높아지고 있다.

 일국양제(一國兩制)가 적용되는 홍콩은 중국이 반체제 인사로 낙인 찍은 인사일지라도 방문 여부를 독자적으로 결정할 수 있는 법적 근거가 있다. 외교와 국방은 중국에 일임하지만 출입국 관리는 홍콩 정부의 관할 업무다. 하지만 정치적으로 미묘한 파장을 부를 수 있는 사안이기 때문에 중국 당국의 눈치를 보지 않을 수 없어 홍콩 정부의 고심이 커지고 있는 것이다.

  미국에서 망명 생활을 하다 현재 대만 국립정치대에서 교수로 재직 중인 왕단은 씨 주석의 장례식에 참석하고 싶다는 바람을 2일 자신의 페이스북에 올렸다. 왕단은 “조의만 표한 뒤 바로 홍콩을 떠날 것이다. 홍콩 정부가 우려할 게 없다”고 밝혔다. 왕단의 페이스북에는 3일 밤까지 2700건이 넘는 지지의 글이 올라왔다. 미국으로 망명해 미국 여권을 소지한 왕단은 지금까지 수차례 홍콩 방문을 시도했으나 모두 거절됐다.

 홍콩 언론계에선 천안문 사태 관련자 가운데 일부에게 홍콩 방문이 허용됐던 전례를 들어 왕단 등의 방문이 성사될 수도 있을 것이란 전망도 나오고 있다. 홍콩 정치 소식통은 “천안문 사태 당시 학생운동의 지도자 가운데 한 명이었던 리루(李路)가 지난해 9월 글로벌 기부운동을 펼치고 있는 워런 버핏을 수행해 광둥(廣東)성 선전(深?)을 방문했다”며 "민주화 운동에 대한 씨토와의 상징적 무게감 때문에 일시적으로 왕단 등의 홍콩 입국이 허용될 가능성을 배제하기 어렵다”고 말했다.

홍콩=정용환 특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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