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사설

욕 없이 대화 못하는 요즘 청소년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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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4면

요즘 인터넷에선 이른바 ‘욕 배틀’이 인기다. 채팅이나 메신저를 통해 서로 욕설을 주고 받는 게임이다. 더 자극적이고 심한 욕을 해서 상대방 말문이 막히게 만드는 쪽이 이긴다. 스마트폰 애플리케이션 중에도 성우 목소리로 갖가지 욕을 녹음해 들려주는 ‘욕 어플’을 많이 찾는다. 이 같은 ‘욕 문화’의 최대 소비자는 청소년들이다. 이들에겐 욕이 놀이이고 생활이다. ‘X나’라는 말을 욕으로 생각하면 구세대, 그렇지 않으면 10대라는 우스개가 있을 지경이다.

 욕에 중독되다시피 한 우리 청소년들의 언어 실태가 최근 정부 조사 결과 다시금 확인됐다. 열 명 중 일곱 명은 매일 욕을 한다고 한다. 남녀 학생 구분도 없고 초·중·고생 모두 매한가지다. 욕을 안 하면 일상 대화가 불가능할 지경이라는 게 청소년 스스로는 물론 교사·학부모들의 공통된 진단이다.

 아이들을 탓하기보단 사태가 이 지경이 되도록 방치한 어른들부터 반성할 일이다. 지금이라도 바로잡자면 원인 진단부터 제대로 해야 한다. 이번 조사 결과에서도 드러나듯 청소년층에 욕설이 급속히 퍼진 계기는 인터넷이다. 일찌감치 유치원이나 초등학교 저학년 시절 온라인 게임을 하면서 욕설을 배우게 된다. 그렇게 익힌 말을 아이들이 실생활에서 무슨 뜻인지도 모르고 사용하면서 습관화되는 것이다. 다른 친구들이 다 하는 욕을 혼자만 안 쓰다간 자칫 따돌림당하는 또래문화 역시 욕의 확산에 일조한다.

 따라서 청소년들이 많이 이용하는 게임 및 포털 사이트 등에 대한 언어 정화 조치가 필요하다. 가정과 학교에서 욕의 의미를 가르쳐야 함은 물론이다. 자기가 쓰는 욕이 무슨 뜻인지 아는 청소년은 열 중 셋에도 못 미친다. 서울 신당초등학교가 벌이는 ‘높임말 쓰기 운동’도 참고할 만하다. 이 학교에선 아이들이 서로 ‘○○님’으로 부르며 높임말을 쓴다. 처음엔 어색해했지만 지금은 욕을 안 하니까 더 친해진다며 좋아한다고 한다. 다른 학교에 전학 갔다가 못 견디고 되돌아오는 경우가 있을 정도다. 우리 청소년들이 다시 고운 말을 쓰게 만드는 건 어른들에게 달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