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보균의 세상 탐사] MB 정권의 중국 상상력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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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5면

박보균
편집인

중국은 불편하다. 거대 중국은 피곤한 이웃이다. 중국 대륙이 강하게 통합되면 더욱 그렇다. 한반도 역사는 고달파진다. 지정학적 숙명이다. 중국 리더십은 실리에 숙련돼 있다. 국익을 챙기는 변신에 익숙하다. 결정적 순간에 명분을 버린다. 상대방은 충격과 좌절을 맛본다. 남북한 모두 씁쓸한 경험을 갖고 있다.

 “나는 중국을 믿지 않고 있다”-. 북한 김정일 국방위원장의 발언이다. 2009년 8월 평양에서 현정은 현대그룹 회장을 만났을 때 언급했다고 한다. 위키리크스의 공개 내용이다. 현대그룹 측은 그 발언을 부인했다. 하지만 중국 지도부에 대한 북한의 불신과 의심은 많이 알려져 있다. 김대중·노무현 정권의 남북 대화 때 북한 대표단은 그런 반감을 표출했다. 그들은 우리 대표단에게 “중국은 여러 개의 딴 주머니를 차고 있어 그 속을 모르겠다”고 불평하곤 했다.

 그 불신은 1992년 8월 한국과의 수교 때 굳어졌다. 그때 중국의 외교적 전환은 냉정했다. 그것은 북한엔 배신과 수모였다. 그 무렵 중국 지도자 장쩌민(江澤民·강택민)은 외교부장 첸치천(錢其琛·전기침)을 평양에 보냈다. 한·중 수교 결정을 북한 주석 김일성에게 사전 통보하기 위해서였다. 첸치천은 이렇게 기억한다. “(통보) 자리는 김 주석이 역대 중국 대표단과 회견한 것 중 가장 짧았다. 초대연도 없었다.” 그의 회고록은 그 자리의 어색한 침묵과 불안한 긴장을 담고 있다.

 연평도· 천안함 도발 때 중국의 북한 두둔은 일방적이다. 한국의 기대를 거칠게 외면했다. 한·중은 전략적 협력 동반자라고 했다. 하지만 중국은 그 관계를 묵살했다. 중국은 핵을 가진 북한의 활용 가치에 착안했다. 핵 무장한 북한을 앞세워 한·미·일의 남방세력을 차단하려 한다. 그 대가로 중국은 북한에 식량과 연료를 준다. 지원 규모는 북한이 연명할 정도다. 김정일 정권의 신세는 그처럼 처량하다. 국제사회는 북한 쪽에 영향력을 행사하라고 중국에 요청했다. 중국은 간곡한 부탁을 거절했다. 북한의 알량한 자존심을 세워주는 척한다.

 김영삼(YS) 전 대통령은 중국의 행태를 요즘 실감나게 회고한다. 95년 11월 서울에서 장쩌민 주석과의 정상회담 때다. “(내가) 이렇게 물었다. 중국·북한이 특수 관계인데 북한 사정이 어떠냐고 질문했다. 그런데 장쩌민 주석은 일절 모른다고 하더라. 그래서 북한에 그렇게 경제·외교 원조를 해주는데 왜 모르느냐고 물었다. 그런데도 알지 못한다고 하더라. 오히려 한국 사람들이 언어도 통하고 같은 민족이니 더 잘 알지 않느냐고 묻더라.”

 YS는 “중국 지도자들, 참…” 하며 혀를 찼다. 그 어감에는 중국 리더십의 어이없는 능청에 대한 개탄이 드러난다. 그때 한국은 잘 나갔다. YS 의 따지는 듯한 질문이 통했다. 지금 정상회담에선 어림없다. 1988년 서울 올림픽 이후 10년은 한·중 관계에서 독특한 예외의 시기였다. 그 시절 중국은 한강의 기적을 배우려 했다. 베이징에서 한국 관광객들은 우월감을 맛보았다. 수천 년 양국관계에서 처음이다. 앞으로도 힘든 상황이다. 전무후무한 10년이다. 그 역전의 시절은 허무하게 마감됐다. 이젠 신화일 뿐이다.

 한반도에 대한 중국의 영향력은 위력적이다. 그것은 중국의 급속한 경제·군사적 성장 덕분이다. 하지만 우리의 실책도 크다. 그 한복판에 6자회담(남북한, 미·중·일·러시아)이 있다. 회담 의장국은 중국이다. 주제는 북한 핵무기의 제거다. 지난 10년의 성과는 미약하다. 6자 게임은 미묘하다. 북핵은 국제적 이슈다. 우리 안보의 사활도 걸린 문제다. 하지만 한국 지도층은 스스로를 종속변수로 설정했다. 북핵 이슈의 공세적 관리에 실패했다. 대신 중국에 매달려 김정일 정권에 압력을 행사해 달라고 하소연했다. 후유증은 심각했다. 중국의 한반도 영향력은 자연스럽게 확장됐다. 한반도의 중국 파워를 우리가 불러들인 셈이다. 한국 외교의 허술함과 무기력 탓이다. 반면 그것은 중국 주석 후진타오(胡錦濤·호금도)의 성취다. 선명함과 모호함을 교묘히 섞는 중국외교의 승리다.

 2011년부터 소용돌이의 새 10년이 시작됐다. 중국의 시대를 예고하고 있다. 중국과 친해야 한다. 경제적 친밀도는 더욱 높아져야 한다. 중국은 우리에게 경제·외교적 기회다. 중국에 매력적으로 다가가야 한다. 이명박(MB) 정권은 부국강병의 평범한 경험에 충실해야 한다. 힘과 돈이 있어야 타국에 무시당하지 않는다. 한반도 운명 결정자로서의 자주 의식을 갖춰야 한다. 리더십의 역사적 상상력이 절실하다.

박보균 편집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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