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비즈 칼럼

기업 후원 생색내면 역효과

중앙일보

입력

업데이트

지면보기

경제 04면

박재항
이노션 마케팅본부장

1990년대 초 뉴욕에서 대학원을 다녔던 필자는 65년과 66년 비틀스 공연이 열린 뉴욕 메츠의 홈구장 셰아 스타디움에 대한 생생한 기억을 갖고 있다. 강렬한 파란색에 원통형으로 생긴 셰아 스타디움은 뉴욕의 내셔널리그 야구팀이었던 다저스와 자이언츠가 서부로 떠난 후에 새로운 내셔널리그 팀으로 메츠를 만드는 데 결정적인 역할을 한 변호사 윌리엄 셰아를 기념해 그렇게 이름이 붙여졌다.

 원래 평범하게 ‘플러싱 미도공원 시립스타디움’으로 이름을 붙이려 했는데, 윌리엄 셰아의 노력과 역할에 대한 감사의 표시로 그의 이름을 붙여야 한다는 여론이 일어 이름이 바뀌었다고 한다.

이곳에서 비틀스는 65년과 66년, 그리고 비틀스 멤버 폴 매카트니가 2009년 7월 공연했다. 최근 녹화된 공연 실황을 접할 기회가 있었다. 공연 중간중간 65년 비틀스 공연이 자주 무대에 설치된 두 대형 화면을 장식했다. 그런데 대형화면 사이의 글자가 계속 눈에 들어왔다. 대형 금융사인 씨티그룹의 ‘Citi’라는 로고였다. 그 구장은 더 이상 셰아 스타디움이 아니었다. ‘시티 필드’라는 이름을 달고 있었다. 씨티그룹이 20년간 매년 2000만 달러를 내는 조건으로 구장에 자신의 이름을 붙이는 소위 ‘타이틀 스폰서’의 자격을 산 것이다. 뉴욕 메츠는 기존의 셰아 스타디움을 완전히 헐어서 시티 필드를 위한 주차장으로 만들어버렸다.

 셰아라는 이름 속에는 뉴욕 메츠의 초기 시절과 단기간에 우승을 일구었던 기적의 역사, 그리고 그를 응원한 다양한 인종들의 외침과 사랑이 담겨 있다. 시티 필드라는 이름에선 그런 감정과 역사를 담아낼 수가 없다. 씨티그룹은 20년간 총 4억 달러에 이르는 돈을 내고 자신의 이름을 노출시키며, 오히려 사랑보다 반감을 더 많이 자아내고 있는 셈이다.

원래 뉴욕에 있다가 샌프란시스코로 옮긴 자이언츠의 홈구장은 ‘캔들스틱 파크’였다. 바람이 세기로 유명해 야구장으로는 최악의 기후조건을 갖춘 곳이었다. 그래도 자이언츠의 팬들은 그것을 오히려 자랑스러워했고, 원정팀의 선수들이 당황해 실수하는 모습을 보며 야유를 퍼붓고 놀림거리로 삼는 것을 즐겼다. 정보기기 ‘팜파일럿’으로 유명했던 3콤(3Com)이 95년 캔들스틱 파크에 대한 타이틀스폰서 자격을 샀다. 그때부터 2002년까지 캔들스틱의 공식적인 명칭은 ‘3콤 파크’였다. 그러나 오로지 언론에서만 그렇게 불렀지 팬들과 선수들은 항상 캔들스틱 파크라고 불렀다. 샌프란시스코 자이언츠 야구팀의 팬들에게 3콤은 증오와 조롱의 대상이 돼버렸다.

 다큐멘터리 영화계에서 세계적으로 이름을 알리고 있는 필자의 지인인 한 감독은 기업의 스폰서를 유치할 때 항상 “관객들이 기업이 메시지를 전달하고 있다고 느끼는 순간 다큐와 기업 모두 실패한 것”이라는 말을 한다. 기업들이 특정 행사나 장소, 드라마를 스폰서할 때 노출이 능사가 아니다. 주체로 앞에 나서서는 안 된다. 자신을 그 맥락 속에 엮어넣어야 한다. 그런데 실제 기업에서의 의사결정 과정을 보면 그리 쉬운 일이 아니다. 객관적으로 기업의 이름이 몇 번이나 불리고, 로고가 얼마나 많은 사람에게 노출되는가만이 강조되고, 위에서 언급한 것과 같은 역작용은 간과되는 경우가 많다. 단순한 기업의 노출을 넘어서 진정으로 소비자와 함께 어울리고자 하는 마음가짐이 특히나 이런 스폰서 활동에서는 우선돼야 한다.

박재항 이노션 마케팅본부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