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몽구 회장, 신년사 30분 쏟아낸 뜻은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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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 09면

3일 오전 8시 서울 양재동 현대기아차그룹 사옥 2층 대강당. 신년하례식에 나선 정몽구(73·사진) 회장은 평소와는 다른 모습을 보였다. 예년 같으면 준비한 원고를 5분여 만에 끝내고 몇 가지 당부사항만 전달했다. 그러나 이날은 확연히 달랐다. 별도 원고는 참고만 할 뿐 자신의 이야기로 무려 30분이나 연설했다. 지금 현대·기아차가 잘나가고는 있지만, 아직 목마르다는 점을 나타냈기 때문이다.

 현대·기아차는 지난해 전 세계 시장에서 현대·기아차를 575만 대나 팔았다. 도요타·GM·폴크스바겐그룹(르노-닛산 제외)에 이은 세계 4위권이다. 잠정 집계지만 미국 포드와 수만 대 차이로 4위를 다투는 놀라운 실적이다. 정 회장이 1998년 12월 기아차를 인수해 이듬해 3월 회장에 취임했을 때(99년 202만 대 판매)보다 무려 350만 대 이상 늘어난 수치다. 최근 10년간 판매가 이처럼 증가한 자동차 회사는 전 세계에서 도요타 이외에 현대·기아뿐이다. 성장률로 따지면 단연 세계 1위다.

 그럼에도 그는 우선 “올해는 글로벌 공장의 가동률이 최고치로 올라가니 633만 대 판매를 목표로 잡았다”며 명확한 목표를 제시했다. 이는 지난해보다 10% 증가한 것으로 공격경영 기조를 이어간다는 의미다. 전 세계 주요 자동차 업체들이 올해 판매 목표로 정한 5% 성장보다 훨씬 높은 수치다. 정 회장은 12년 전 취임할 때 내세웠던 ‘글로벌 톱5’는 지난해 이미 달성했다. 다음 목표는 진정한 세계 자동차 업계의 강자만 모인 ‘글로벌 빅3’를 암시한 것이다. 이를 위해선 지금 고삐를 늦출 수 없다는 얘기다. 내심 도요타를 꺾고 아시아를 대표하는 자동차 업체로 발돋움하겠다는 생각이다.

 그는 평소 경영철학인 품질경영을 여전히 강조했다. 하지만 지난해까지 이야기해온 품질경영의 내용과는 사뭇 달랐다. 그는 “품질경영은 부품업체의 품질 수준에서 나온다”며 “협력업체를 잘 보듬어 보다 앞선 품질을 확보하라”고 당부했다. 이어 12년간 강조해온 품질경영의 성과도 거둬들여야 한다고 덧붙였다. 그는 또 “품질이 좋아졌는데 해외에서 중고차 가치는 아직까지 만족할 만한 수준이 아니다. 중고차 가격을 높여 재구매를 유도할 수 있는 마케팅과 판매기법을 개발하라”고 주문했다. 단순히 차를 잘 만들고 출고 직전 검사를 통해 품질을 끌어올리는 원시적인 품질경영은 이미 달성을 했다는 의미다. 소비자가 만족하는 질적인 차원에서, 이익을 거둬들이는 차원에서의 품질경영으로 전환하라는 지시다. 올해 현대·기아 중고차의 가치를 끌어올리는 데 주력하겠다는 것을 밝힌 것이다.

 정 회장은 지난해 현대제철의 일관제철소 준공 의미를 품질경영과 연관해 설명하기도 했다. 그는 “지난해에는 당진 제철소 완공을 통한 제철-자동차산업 간 시너지 극대화를 한 뜻 깊은 한 해였다”며 “제철소 건설은 소재(냉연강판)가 나쁘면 회사에 손실을 끼치므로 좋은 소재를 얻기 위한 것”이라고 설명했다. 관심을 끈 현대건설 인수에 대해선 말을 아꼈다. 신년사나 사장단 회의에서도 현대건설 인수는 화제로 등장하지 않았다.

김태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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