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호남 가르는 능선, 그곳에 통합의 태극이 있었다”

중앙선데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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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앙선데이, 디시전메이커를 위한 신문"

지난해 12월 22일 새벽 5시, 지리산 자락 인월(引月)의 둘레길은 보름을 갓 지난 둥근 달빛으로 뽀얬다. 지리산 태극종주의 출발점인 이곳은 태조 이성계가 화살로 달을 끌어당겨 환하게 만든 뒤 왜구를 공격해 물리쳤다는 곳이다.

이날 이성계의 달빛은 우리를 지리산의 품 안으로 끌어당겼다. 나와 산악작가 배두일, 신동연·강남규 중앙SUNDAY 기자의 태극종주는 그렇게 시작됐다.

지리산 태극종주는 성삼재에서 천왕봉까지의 주능선에 서북쪽과 동남쪽으로 이어 태극(S) 문양을 이루는 코스를 걷는 것이다. ‘산은 스스로 물을 가른다’는 의미의 ‘산자분수령(山自分水嶺)’, 즉 ‘산은 물을 넘지 못하고 물은 산을 건너지 않는다’는 원리에 따라 마루금만으로 이어졌다. 서북쪽으로는 덕두봉을 거쳐 구인월교 남천에 닿고, 동남쪽으로는 웅석봉까지 온 후에 여러 갈래로 갈라져 경호강, 덕천강, 남강, 진양호로 이어진다.

이번엔 해발 1000m가 넘는 덕두봉부터 웅석봉까지의 마루금을 걸어볼 요량이다.
달빛과 헤드 랜턴의 빛에 의지하여 1시간40분 정도 가파르게 치고 올라서 첫 봉우리인 덕두봉 정상에 닿았다. 턱까지 찬 숨을 몰아쉬며 뉴밀레니엄 들어 10년이 되는 경인년을 되돌아본다. 참으로 힘들고 절망적인 한 해였다. 남과 북, 진보와 보수, 남성과 여성, 영남과 호남의 갈등과 분열은 양끝으로 더욱 벌어진 느낌이다. 무릇 태극(太極)이라 함은 우주 만물의 근원이 되는 실체로서 분열 이전의 통합 상태를 의미한다. 영남과 호남을 가르는 지리산 능선길 200리, 그곳에 몸을 맡겨서라도 통합과 소통의 의미를 되새기고 싶다.

두 번째 봉우리인 바래봉을 향해 가는데 날이 밝아오기 시작했다. 서쪽은 아직 달이 밝은데 동쪽서는 해가 밀고 올라왔다. 어둠과 빛의 어울림은 신비롭기까지 하다. 내친김에 토끼해, 신묘년을 생각한다. 토끼를 뜻하는 묘(卯)는 새싹이 둘로 갈라져 지상으로 뻗어나가는 형상을 표현하는 상형문자다. 월로는 음력 2월이고 시간으로는 오전 5시부터 7시까지다. 밤과 아침이 교차하는 시간이다. 토끼해인 2011년은 암울한 어둠의 시대에서 희망의 밝은 시대로 넘어가는 과도기가 되지 않을까.

글=김선수 민주사회를 위한 변호사 모임 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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