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하만화시대 활짝…김진作 〈바람의 나라〉 곧 완간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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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화 한 편이 7년동안이나 끝나지 않고 있다면 기다림에 지친 독자들은 대개 떨어져나가게 마련이다.

그런데 김진(39)씨의 〈바람의 나라〉는 예외다. 92년 〈댕기〉에서 연재를 시작한 이 만화는 잡지 폐간 후 3년 정도 쉬었다가 지난해 시공사에서 12권이 발매되면서 다시 행진을 계속했다.

순정만화 소재로는 극히 드문 우리나라 고대사를 소재로 한 이 팬터지물은 온라인으로 즐길 수 있는 머드(MUD)게임으로도 제작돼 게임 매니어들 사이에 선풍적 인기를 끌기도 했다.

최근 16권을 낸 그를 서울 강동구 암사동의 작업실에서 만났다.

"최소한 20권은 넘길 것"이라는 게 그의 계획이고 보면 아직 대단원을 향한 카운트다운에 들어가긴 이른 셈이다. 순정만화에서 20권 분량에 육박하는 '대작'은 그리 흔치 않다.

꽤 오랫동안 만화팬들의 애를 끓였던 신일숙씨의 〈아르미안의 네딸들〉도 14권이었으니 출판사의 상업적 계산이 깔려 있든 아니든 간에 이만한 분량을 계속 끌고 나간다는 것은 육체적.정신적으로 쉽지 않은 일이다. 그래서 그는 "팔자려니 하고 그려요" 라며 웃는다.

〈바람의…〉는 중앙집권적 국가 체제를 확립하기 이전의 고구려를 주 무대로 하고 있다.

고구려 2대왕인 유리왕의 아들 대무신왕 무휼의 정벌담에 그의 아들 호동왕자와 낙랑공주의 사랑 이야기가 중첩된다.

아버지와 아들 사이의 얽히고 설킨 애증, 미워하던 아버지의 모습을 아버지의 위치가 되자 시나브로 닮아가는 모순 등 인간관계의 미묘한 본질을 꿰뚫고 있는 점이 매력으로 꼽힌다.

내용이 다소 복잡해 대중적이라기 보다는 '김진 군단'의 열광적 호응을 받고 있다. 특히 '남자 독자들이 읽는 순정만화'라는 특징을 갖고 있다.

그의 작업실에는 〈바람의…〉를 위한 자료가 수북하다. 〈조선상고사〉 〈삼국사기〉 〈고대복식사전〉 〈고대시가연구〉…. 국내에 출간된 역사서의 대개가 삼국시대부터 다루고 있어 고증에 어려움을 많이 겪는다.

"공식 기록이 없어서 불편하기도 하지만 한편으로는 저의 상상력을 발휘할 수 있는 여지가 그만큼 많아 좋기도 해요." 16권까지 오면서 틀린 부분에 대해 지적도 많이 받았고 재판을 찍을 때면 어김없이 실수한 부분을 수정했다.

"가령 종이가 나오기 전인데 종이로 된 책을 보고 있는 장면을 그리는 식으로 엉뚱한 실수를 할 때가 있어요. 비단에 글씨를 써야하는 데 말이죠."

〈바람의…〉를 그린 이후로 TV나 신문에 그 시대에 관한 새로운 사실이 밝혀졌다는 뉴스가 나올 때마다 가슴이 철렁한다고 한다.

"고쳐야 할 게 자꾸 생기니까 깜짝깜짝 놀랄 수밖에요."

83년 〈바다로 간 새〉를 잡지 〈여고시대〉에 연재하면서 데뷔한 그는 올해로 작가생활 16년째인 순정만화계의 베테랑. "호동왕자가 죽어야 완결이 될텐데 마음이 약해 자꾸 미루고 있다"는 그의 변명에서 주인공에 대한 깊은 애정이 배어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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