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필드 옮긴 듯 첨단기술과 그린 결합 … 전국 온라인 연결해 기록까지 관리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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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 02면

2002년 시뮬레이터 100개로 시작된 스크린 골프는 2010년 업소 수 3500개, 시뮬레이터 2만 개, 연 매출 1조2000억원을 내는 산업으로 성장했다. [골프존 제공]


악천후를 기다리는 사람들이 있다. 스크린 골프방 업주들이다. 최대 스크린 골프 업체 골프존에 따르면 12월 들어 기온이 1도 떨어질 때마다 스크린 골프 이용객은 1% 정도 늘었다. 중부지방의 기온이 영하 10도 아래로 떨어진 15일, 24일, 25일의 경우에는 평소보다 5% 이상 라운드 수가 늘었다고 한다. 올해는 4월에 폭설이 내리고 8월 한 달 중 25일간 비가 내리는 등 유난히 날씨가 좋지 않았다. 이에 따라 야외 골프장의 내장객 수는 지난해에 비해 20% 정도 줄어든 2000만 명 정도가 될 것으로 골프장경영협회는 추산한다. 그러나 스크린 골프 라운드 수는 지난해에 비해 50% 정도 늘어 연말까지 3600여 만명이 이용할 것으로 예상된다. 지난해까지 실제 골프장 라운드가 더 많았지만 올해 큰 폭으로 역전된 것이다.

28일 오후 서울 강남구 수서동 K스크린 골프장에 있는 9개의 방은 가득 찼다. 로비에도 기다리는 사람들로 붐볐다. 평소 같으면 평일 오후 스크린 골프장은 한산한 편이지만 이날은 폭설이 내린 후여서 사람들이 몰린 것이다. 이 스크린 골프장의 주인 이재희(45·여)씨는 “비나 눈이 내리면 골프장에 가려던 사람이나 실외 연습장에 가던 사람들이 스크린 골프장으로 오기 때문에 30% 정도 손님이 늘어난다”며 “비나 눈이 자주 왔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스크린 골프는 악천후에 더 성장한다. 날씨가 좋은 가을보다 겨울 이용자 수가 25% 이상 많다. 한여름도 비슷하다. 올해 스크린 골프의 성장세는 다소 더뎌지리라고 예상됐으나 기상이변이 워낙 많았기 때문에 지난해보다 1200만 라운드가 더 늘었다. 스크린 골프의 압승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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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스크린 골프는 2002년 처음 나왔다. 근사한 클럽하우스를 만들고 젊은 여성 캐디까지 고용한 스크린 골프 업체가 등장했다. 그러나 너무 일렀다. 골퍼들은 호응하지 않았고 업체들은 사라졌다. 현재 국내 스크린 골프 시장의 약 80%를 점유하고 있는 골프존은 이때 연습장 구석에 들어갈 시뮬레이터를 만들다가 2005년 본격적으로 시장에 뛰어들었다.

이 회사 김영찬 사장은 “삼성전자에서 은퇴 후 골프를 좋아해 여러 후배들을 레슨도 해주고 머리도 올려줬는데 연습장에서 연습할 때와 처음 실제 골프장에 갈 때 너무나 차이가 크더라. 이를 메워줄 뭔가가 필요하다고 여겨 사업을 시작했다”고 말했다.

 골프존은 2005년 스크린 골프 붐을 주도했다. 골프존이 스크린 골프 붐을 일으킨 비결은 재미있다는 점이다. 김 사장은 “소비자들의 욕구를 정확히 파악해서 제품에 녹여 놨고 디테일이 뛰어나다. 그것이 진짜 기술”이라고 말했다. 골프존은 다른 업체들에 비해 그래픽이 좋다. 홀인원, 풍선 맞히기 등 이벤트도 많다. 자신의 스윙 모션을 볼 수 있고 이에 맞는 레슨까지 받을 수 있다는 장점이 있다.


 붐이 일자 여러 업체들이 뛰어들었다. 대기업인 KT와 SK의 계열사도 들어왔다. 그러나 골프존은 시장 점유율을 더욱 높이고 있다. 골프존이 잘나가는 이유는 기술이 탁월해서만은 아니다. 경쟁 업체들은 “스크린 골프에서는 볼의 탄도를 예측하는 센서 기술이 생명인데 골프존이 최고는 아니다”고 주장한다. 골프존도 부인하지 않는 부분이다. 골프존 연구소의 김필주 소프트웨어 개발실장은 “각 업체의 센서는 일장일단이 있다. 어느 업체의 기술이 특별히 뛰어나다고 하기 어렵다”고 말했다.

 그러면 골프존의 독주 이유는 뭘까. 바로 잘 짜여진 네트워크다. 김 사장은 “정보통신 분야에서 20여 년간의 경험을 가지고 있다. 낱개로 판매한 시뮬레이터를 연결, 전국을 온라인화하면서 폭발적으로 성장하기 시작했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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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필주 실장은 “이용자의 전국 순위가 나오고 유저들은 과거의 기록을 다 볼 수 있다. 2년 전 버디를 한 기록 등도 다 찾아 볼 수 있기 때문에 한 번 골프존을 이용한 사람들은 다른 업체의 시뮬레이터를 이용하지 않게 된다”고 말했다.

 김 사장은 “사업을 시작한 이래 골프의 인기가 높아지고 야외 골프장의 부킹난이 겹치는 등 스크린 골프가 발전할 구석이 많았다. 운도 따랐다”고 말했다. 그러나 운만으로 성공할 수는 없다. 그는 “삼성전자에 14년 다녔는데 항상 일류를 강조하는 회사 분위기 때문에 일등 유전자가 생긴 것 같다”며 “소일거리로 시작했다고는 해도 일을 남과 비슷하게 대충 할 수는 없었다”고 말했다. 그는 고객들에게 새로운 즐거움을 주자는 생각을 하니 여러 아이디어가 나왔다고 한다.

 골프존은 세계 최대 스포츠 브랜드인 나이키 이상으로 커 나가겠다는 야심 찬 비전을 갖고 있다. 김영찬 사장은 “스크린 골프의 주도권은 한국이 잡았다. 이제 우리가 만들면 표준이 되는데 그 힘은 거대하다”고 강조했다. 시뮬레이터는 한 개에 3000만원대다.

김 사장은 “스크린 골프로 한국의 경제에 기여하고 싶다”고 말했다. 골프존은 한국을 중심으로 일본, 중국, 동남아시아, 유럽, 미주 순으로 온라인화하고 네트워크를 구축하고 있다. 온라인 스크린 골프대회를 개최하고 있는데 곧 프로 선수들도 참가할 수 있도록 확장할 예정이다.

성호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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