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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업 사회공헌, 전문성 살려라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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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 04면

안규문
밀레코리아 대표

세상이 각박하다고들 하지만 바다 건너 미국에서 들려오는 소식을 보면 꼭 그렇지만도 않은 듯하다.

경제 회복이 더딘 상황에서 억만장자들의 줄 이은 기부가 세밑을 훈훈하게 만들고 있다. 수십억 달러의 재산을 가진 페이스북 창립자 마크 저커버그 또한 그 행렬에 동참했다. 미국의 한 공립초등학교에 1억 달러를 내놓기로 한 데 이어, 최근에는 재산의 절반 이상을 기부하기로 약속했다. 올해 나이 26세, 열정 넘치는 젊은이가 돈 욕심을 내기보다 사회공헌 활동에 더 큰 열정을 보이는 모습은 신선하다.

그가 미국 시사지 ‘타임’이 정한 ‘2010년 올해의 인물’ 1위에 오른 것도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란 새 비즈니스 모델을 창안한 데 더해 이처럼 남다른 사회적 행보를 보였기 때문이 아닌가 생각된다.

 미국 거부들의 릴레이 기부 약속은 마이크로소프트 창업자 빌 게이츠와 버크셔 해서웨이 회장 워런 버핏의 캠페인에 힘입은 바 크다. 전 재산의 최소 절반 이상을 기부하도록 권하는 ‘기부 서약(The Giving Pledge)’ 캠페인이 그것이다.

미국 기업인들이 이런 나눔의 문화를 체화할 수 있었던 배경은 무엇일까. ‘석유왕’으로 불린 존 데이비슨 록펠러와 ‘철강왕’ 앤드루 카네기 얘기를 빼놓을 수 없다. 19세기 말부터 20세기 초를 산 이들은 교육·문화·의료 등 다방면의 사회공헌 활동으로 미국의 나눔문화를 선도했다.

록펠러는 시카고대학교를 설립하는 한편 ‘록펠러 재단’을 통해 문화예술·교육·의료 전반에 엄청난 지원을 했다. 카네기 역시 교육과 자선 사업으로 노년을 보냈다. 카네기멜런대학교와 카네기교육진흥재단도 설립했다. 이들의 기부 열정은 미국민들이 매해 평균 3000억 달러(약 344조원)를 기부하는 정신적·문화적 배경이 됐다.

 사회공헌 측면에서는 유럽 기업들도 미국에 못지않은 시스템을 갖추고 있다. 필자가 몸담은 독일 가전업체 밀레도 1974년부터 소외된 어린이들을 위한 ‘게마인잠 줌 스포트(Gemeinsam zum Sport)’라는 이름의 프로그램을 시행하고 있다. 본사 소재지인 독일 귀테슬로우시와 연계해 비행청소년들이 축구·야구·농구 등 스포츠를 통해 몸과 마음을 단련할 수 있도록 지원하고 있다.

스포츠는 헌신을 필요로 한다. 또 서로를 배려하고 지원하며 사회적 규범과 규칙을 지키는 훈련을 하기에 안성맞춤이다. 팀워크의 중요성을 일깨워주며 성취감도 맛보게 해준다. 밀레가 36년 동안이나 이 프로그램을 흔들림 없이 지원하고 있는 이유다.

 몇 년 전부터는 우리나라 기업들도 소외계층 돕기에 적극적으로 나서고 있다. 특히 연말연시에는 연탄 나르기, 헌혈부터 각종 후원금 지원까지 사회공헌 활동이 더욱 활발해진다. 바람이 있다면 미국·유럽 등 기부 선진국의 기업들처럼 사람들이 단돈 1000원을 내더라도 자연스러운 행복을 느낄 수 있는 나눔문화 조성에 더욱 힘을 쏟아주었으면 하는 것이다.

기업의 사회공헌 활동이 한 단계 진화하려면 보다 특화되고 교육적인 사회공헌 시스템 마련이 필요하다는 생각이다. 이제 사회공헌은 단순한 자선을 넘어 그 기업의 미래 이미지까지 그릴 수 있게 하는 주요 경영활동으로 자리 잡았다. 이를 적극적으로 펼치는 것이 진정한 상생의 길이며, 선진국으로 가는 지름길일 것이다.

안규문 밀레코리아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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