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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상공간을 점령하라” 인터넷 주소 확보 비상

중앙일보

입력

요즘 가장 인기 있는 부동산은 가상세계에 있는 듯하다.
최근에 인터넷 주소를 확보하려는 사람들은 괜찮은 이름이 몽땅 다른 사람들 차지일 뿐 아니라 어쩌면 자신의 이름조차 존재를 전혀 몰랐던 도깨비가 차지하고 있는 것을 발견하는 경우가 적지 않다. 또 가상세계의 밀렵자들은 나중에 돈을 받고 팔려는 의도로 다른 사람의 이름을 선점하기도 한다.

혹시 인터넷 신생기업에 걸맞은 산뜻한 이름이나 다소 설명적인 이름을 원한다면 일찌감치 꿈 깨는 게 좋다. 발빠른 사람들이 눈에 띄는 제품명이나 거의 모든 단어를 모두 낚아채 인터넷 도메인으로 등록해 놓았기 때문이다.

요컨대 인터넷의 명명체계가 한계용량을 벗어나고 있는 것이다. 그 결과 외우기 쉽고 쓰기 쉬운 도메인 이름은 다이아몬드보다 값지며 그런 이름을 얻는다는 것은 맨땅에서 보석 찾기만큼이나 어려운 실정이 됐다.

특히 ‘가상공간 무단 점유’는 인터넷의 명명체계가 난관에 부닥쳐 있다는 것을 단적으로 보여준다. 이용자 유인용(일례로 상표 등록된 이름이라며 그 이름을 입력하는 이들을 자신이 만든 음란 사이트로 유도하는 것)이든 투기 목적이든 ‘가상공간 무단 점유’라는 말은 지나치게 관대한 표현이다.

현실 세계의 무단 점유자는 법적 권리가 없지만 현실적인 필요성 때문에 비어 있는 공간을 점유한다. 반면 인터넷에서는 해당 이름을 실제 사용해야 하는 사람들로부터 돈을 합법적으로 갈취하기 위해 자신은 구축하지도 않을 사이트 이름을 낚아채는 사람들이 문제다. 그들의 동기는 필요성이 아니라 탐욕이다.

날마다 사악한 가상공간 무단 점유 행위를 둘러싼 뉴스에 접하게 된다. 최근에는 스포츠나 영화 스타들의 이름을 낚아채 엄청난 값에 팔려 드는 이들도 나타났다(그런 이름은 영리사업의 목적으로 사용되기도 한다. 일례로 ‘sammysosa.com’을 입력하면 비타민 판매 사이트로 연결된다).

특히 미국에는 선거철이 다가오면서 특정 후보의 이름을 온갖 순열로 배열한 사이트 이름이 유행한다. 하나라도 놓칠 경우 상대방이 거머쥘지 모른다(공화당의 선두주자 조지 W. 부시 텍사스 주지사는 문제를 미연에 방지하기 위해 ‘bushsucks.com’을 이미 확보해 놓은 상태다).

경매 사이트 이베이(eBay)에서는 어설픈 이름까지 천문학적인 가격(‘artmosphere.com’의 경우 5천 달러)으로 팔려는 사람이 있다. 개인 홈페이지 구축 붐으로 문제는 점차 심각해지고 있다. 개인 웹 사이트라면 해당자 이름이 사용되는 것이 이상적이다. 그러나 동명이인(同名異人)이 많을 경우 해당 이름을 손에 넣는 것은 한 사람뿐이다.

역설적인 것은 그렇게 값진 도메인 이름들이 교묘한 고안품에 불과하다는 점이다. 도메인 이름은 일련의 숫자로 이뤄진 이른바 ‘IP 주소’에 덧붙어 있는 사족이기 때문이다. 처음에는 그 숫자들을 낱말에 연결시킨 등록부가 제몫을 톡톡히 했다. 단어는 숫자보다 기억하기가 쉽기 때문이다. 그러나 숫자는 무한한 반면 단어 수에는 한계가 있다. 일례로 약국이나 가구점의 경우 선택할 수 있는 단어 수는 더 제한돼 있다. 게다가 가장 적합한 호칭을 갖게 되는 것은 한 업체뿐이다. ‘drugstore. com’이나 ‘furniture.com’을 예로 들 수 있다. 그런 이름의 가치는 값으로 따질 수 없을 정도로 높다.

다행히 그런 문제가 해결될 가능성도 있다.
일부 업체는 이미 포털이나 브라우저에서 도메인 이름 대신 다른 수단으로 이용자들이 찾고자 하는 사이트에 접속할 수 있게 해주는 디렉토리 시스템을 연구중이다.

그 중 가장 앞서 있는 기술이 ‘리얼 네임스’다. 리얼 네임스는 알타 비스타·잉크토미·마이크로소프트 같은 내로라하는 업체의 검색기술에 통합될 예정이다. 궁극적으로 디렉토리 시스템은 이용자를 원하는 사이트로 더 효과적으로 인도하기 위해 인공지능과 이용자의 관심사에 대한 자료를 필요로 할 것이다.
물론 이용자가 ‘Sony’라는 단어를 입력하면 일본 미디어 그룹 소니의 웹 사이트로 연결된다.

그러나 ‘football’이라는 단어를 입력하면 스포츠 용품점, 프로 미식축구(NFL) 사이트, 미식축구 리그 게임 등 여러 사이트에서 하나를 선택할 수 있다. 또 미식축구 팀인 그린 베이 패커스의 사이트를 계속 방문할 경우 그곳으로 곧장 연결될 수 있다.

그런 디렉토리 서비스가 보편화되면 “도메인 이름에 대한 집착은 사라질 것”이라고 에스더 다이슨은 말했다. 다이슨은 인터넷 주소와 관련된 문제의 해결을 담당하고 있는 비영리 조직 ICANN의 회장이다. 그녀는 “도메인 이름이 앞으로도 계속 존재하겠지만 사람들이 늘 그것을 필요로 하지는 않을 것”이라고 말했다.

다이슨은 정말 그렇게 되기를 바라고 있다. 그녀는 최근 자신의 이름을 그대로 딴 ‘estherdyson.com’이 ICANN을 비판해온 러스 스미스의 수중에 있음을 알게 됐다. 스미스는 다이슨의 도메인 이름을 선점한 이유에 대해 “내가 에스더 다이슨을 싫어하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정당성 여부를 떠나 스미스는 다이슨의 영역(도메인)을 지배하고 있는 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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