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OOK 내가 요즘 읽은 책]『선(禪)과 모터사이클 관리술』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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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0면

박민규
소설가

“아빠, 아빠는 항상 무얼 그렇게 생각하세요?” 특별한 얘기는 아니다. 재밌는 얘기도 아니다. 『선(禪)과 모터사이클 관리술』(로버트 M 피어시그 지음, 장경렬 옮김, 문학과지성사)은 그저 아버지와 아들이 모터사이클을 타고 함께 하는 ‘여행’이 얘기의 전부라 말할 수 있다.

대단한 여행도 아니다. 좀 더 구체적인 설명을 덧붙이자면 정신병력을 가진 아버지와, 정신병 초기 증세를 보이는 그의 아들이 종종 고장을 일으키는 모터사이클과 함께 하는 17일 간의(고작) 여행이다.

 그런데도 불구하고 책은 800페이지라는 두께를 자랑한다. 보는 이에 따라 경기를 일으킬 수도 있는 부피와 중량이다. 아무런 재미도 없는 이 책을, 그러나 나는 반복해서 읽고 있다. 그리고 실은 15년째 읽고 있다(『선을 찾는 늑대』라는 제목으로 오래 전에 내용의 일부가 발간되었던 책이기도 하다). 무슨 놈의 책을 15년째 읽고 있냐 묻는다면 할 말은 없다.

그러나 나처럼 할 말없는 인간이 이 책이 출간된 1974년부터, 또 무려 23개국에 걸쳐 600여만명에 달한다는 사실을 생각하면 얘기는 달라진다. 말하자면 이 책은 인간의 내면에 대한 여행기이다(이렇게 밖에 쓸 수없는 나 자신이 한심하다). 다녀오면 뭐해? 유럽과 인도를, 미국과 남미를 누볐다한들 자신의 내면 속으론 한 발짝도 딛지 못하는 모두에게 이 책을 권하고 싶다.

 밑도 끝도 아무런 재미도 없는 이 책이, 그러나 어쩌면 당신의 삶을 바꿔 놓을지도 모른다고 나는 생각한다. 그 결과를 생각한다면 이보다 재밌는 책이 또 어딨겠는가, 생각이 드는 것도 사실이다. 어디로 가야 할 것인가, 또 어떻게 가야 할 것인가? 우리는 누구나 고장난 오토바이에 앉아있고, 또 우리의 삶은 저다지도 펼쳐져 있으니까.

박민규 (소설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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