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타 데이트] 일본서 제2 전성기 맞은 임창용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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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3일 서울의 한 식당에서 본지 기자와 만나 일본 생활의 뒷얘기를 밝히고 있는 임창용. [임현동 기자]


“나도 믿기지 않는 성공이다.”

 지난 3년간의 일본 생활을 임창용(34·야쿠르트)은 이렇게 표현했다. 그는 지난달 야쿠르트와 3년간 총액 15억 엔(약 208억원)에 재계약했다. 요미우리 등 일본 내 부자구단이 거액을 베팅한 것으로 알려졌지만 임창용은 “야쿠르트와 계약한 금액도 내겐 믿기지 않는 성공이다. 또 야쿠르트 사람들을 얻었으니 만족한다”고 했다. 23일 서울 청담동의 한 식당에서 만난 임창용의 얼굴은 더없이 편안해 보였다.

 ◆극적인 반전 드라마=1990년대 후반 한국 최고의 마무리투수였던 임창용은 2005년 오른 팔꿈치 수술을 받은 뒤 깊은 부진에 빠졌다. 소속팀 삼성에서는 그를 전력 외 선수로 분류했다. 임창용은 “팔꿈치가 아플 때는 야구를 그만둘까 생각도 했다. 하지만 밑바닥까지 떨어지니 오기가 생겼다. 한 번이라도 옛날 구위를 보여주고 그만두고 싶었다”고 말했다.

 임창용은 2007년 겨울 일본 야쿠르트와 연봉 30만 달러(약 3억5000만원)에 헐값 계약을 했다. 그해 삼성에서 받은 5억원보다도 적었다. 야쿠르트 선수들은 값싼 외국인 투수를 거들떠보지도 않았다. 그는 “일본에서 1년 안에 성적을 내지 못하면 버려질 것 같았다. 신인(95년 해태 입단) 시절 이후 2008년처럼 독하게 훈련한 적이 없었다. 가끔 팔꿈치가 쑤실 때는 ‘누가 이기나 보자’며 오히려 더 세게 던졌다. 위축되지 않으니 통증을 이겨낼 수 있었다. 죽기살기로 덤볐더니 예전 구위를 회복했다”고 말했다.

 임창용은 올해까지 3년간 96세이브를 올리며 일본 최고 마무리투수로 우뚝 섰다. 지난해에는 일본프로야구에서 역대 둘째로 빠른 시속 160㎞의 공을 던지기도 했다. 냉담했던 일본 선수들이 몰려들기 시작했다. “빠른 공을 던지는 비결이 뭔가?” “어떻게 유연한 몸을 만들 수 있나?” 등의 질문을 쏟아냈다.

◆돈보다는 사람=임창용은 야쿠르트 입단 3년 만에 최저 연봉 투수에서 최고 몸값의 투수가 됐다. 야쿠르트 선수들 사이에서 ‘투수 최고참’ 하면 다들 외국인 임창용을 꼽는다. 지난달 재계약이 원활하지 않자 주장 미야모토 신야(40)는 임창용에게 전화를 걸어 “야쿠르트에 남아 달라. 지금 대답하지 않으면 내가 당장 한국으로 날아가겠다”고까지 했다. 결국 돈을 더 주겠다는 다른 구단의 제안을 마다하고 올해 센트럴리그 4위인 야쿠르트에 남았다. 그는 “요미우리·주니치 등 강팀에 가서 우승한다면 별로 기쁠 것 같지 않다. 야쿠르트에서 우승하고 싶다. 이곳은 나를 외국인으로 대하지 않는다. 후배들이 심부름도 잘 한다”며 웃었다.

 ◆박찬호·이승엽과 함께=박찬호(37)·이승엽(34)이 퍼시픽리그 오릭스에 입단함에 따라 임창용은 내년 시즌 인터리그 경기에서 한국인 선후배 간 맞대결을 펼치게 됐다. 임창용은 “내년엔 정말 재밌게 됐다. 승엽이가 오릭스에서는 잘할 것이다. 또 찬호 형과 그라운드에서 만나는 것도 설렌다”고 말했다. 그는 “2005년 팔꿈치 수술을 받으러 미국에 갔을 때 찬호 형을 만났다. 위기 때 힘으로만 밀어붙이지 말고 마운드에서 잠시 내려와 심호흡을 하라는 말을 찬호 형이 해줬다. 산소를 마시며 긴장을 풀고, 리듬을 빼앗으라는 얘기인데 구구절절 옳은 말이다. 지금도 긴박할 때 그렇게 한다”고 말했다. 쓰린 좌절과 화려한 부활을 모두 겪은 그는 이제 ‘성공한 실패자’의 모습이었다.

글=김식 기자
사진=임현동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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