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상수 “굿이라도 한 번 해야 되나”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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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나라당 안상수 대표가 23일 서울 여의도 렉싱턴호텔에서 열린 헌정회 회원 팔순 기념행사에 참석해 인사하고 있다. [뉴시스]

“저는 오늘 별로 드릴 말씀이 없다.”

 한나라당 안상수 대표는 23일 말을 아꼈다. 오전 9시 국회에서 열린 당 최고위원회의에선 마이크를 바로 김무성 원내대표에게 넘겼다. 1시간여 뒤 심재철 정책위의장 선출을 위해 당 소속 의원 95명이 모인 의원총회에서도 발언대에 서지 않았다. 다만 당초 정해진 일정은 모두 소화했다. 대한민국 헌정회 행사에 참석해 전직 의원 100여 명과 일일이 악수하며 인사를 나눴고, 사무처 당직자 인사 발령도 냈다.

 안 대표는 겉으로 내색은 안 했지만 이날 기나긴 하루를 보내야 했다. “요즘 룸(살롱)에 가면 ‘자연산’(성형하지 않은 여성)을 찾는다고 하더라”는 발언으로 갖은 공격에 시달려서다. 안 대표의 미니홈피에는 비난 글이 폭주해 결국 게시판을 폐쇄했다. 민주당 박지원 원내대표는 “안상수 대표가 (사퇴하지 말고) 오랫동안 하셨으면 좋겠다”고 비꼬았다. 민주당 여성 의원들은 공동 성명에서 “안 대표는 군대 근처에도 안 가봤지만 성희롱은 장군감”이라고 비난했다.

 당 안에서조차 자조의 목소리가 나왔다. 초선인 김세연 의원은 트위터에 “자연산. 왠지 끝내기 홈런을 보는 듯한 기분. 저만 그런가요?”라고 적었다가 글을 삭제했다. 정옥임 의원도 트위터에 “겨울철에는 불조심, 정치인들은 말조심… 꺼진 불은 다시 살피면 되나, 일단 뱉은 말은 주워 담기도 어려운데…”라며 안타까워했다.

 무엇보다 안 대표 본인이 답답해했다. 안 대표는 한 사석에서 “평소 스킨십이 부족하다고 해서 분위기를 띄우려 일부러 가벼운 농담을 한 건데 본래의 뜻과 다르게 일이 번졌다”고 말했다고 한다. 그러면서 “자꾸 구설에 휘말리니 굿이라도 한 번 해야 하는 것 아니냐”고 스스로 한탄했다고 한다. 그는 전날 밤에 이어 이날 당 공식회의에서 다시 한 번 사과하려고 했으나 최고위원들이 “그러면 야당의 공격 빌미가 되고 일이 더 커질 수 있다”며 만류했다고 한다.

 ◆대표직 그만두기도 쉽지 않아=안 대표 주변에선 거취를 고민하는 얘기도 나온다. 하지만 한나라당 당헌·당규를 감안하면 대표직을 그만두기가 쉽지 않다.

 당헌상 임기가 1년 이상 남은 대표가 그만두면 나머지 최고위원 중 한 명이 대표직을 승계하는 게 아니라 60일 이내에 임시 전당대회를 열어 새 지도부를 구성하도록 돼 있기 때문이다. 안 대표가 그만두면 다른 선출직 최고위원들(4명)도 동반 사퇴해야 새 지도부를 꾸릴 수 있다는 얘기다. 정치적 비용이 만만찮은 셈이다. 현 지도부가 출범한 지 5개월여밖에 안 되는 데다 여권의 현재 구도로 볼 때 안 대표 이후의 대안을 찾기도 쉽지 않은 상황이다.

 여권에선 조기 전당대회를 연다고 하더라도 총선 일정 등을 감안해 대선 1년6개월 전인 2011년 여름께를 거론하는 사람들이 많다. 그래서 당헌 때문에라도 안 대표가 대표직을 유지해야 한다는 주장이 많다.

 다만 안상수 대표 체제에 대한 불만까지 잠재우진 못할 것 같다. 이날 비공개 회의에서도 홍준표·정두언 최고위원 등은 “당·정·청 회의를 하고 언론에 보도된 뒤에야 최고위원들이 내용을 파악하는 상황” “현안에 대해 당내에 사전 조정하고 절충하는 과정이 없다”는 불만이 터져 나왔다고 한다. “현 지도부 체제로 선거를 제대로 치를 수 있겠느냐”는 목소리도 크다.

백일현·허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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