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손은 말굽으로 변하고 (40)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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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러스트 ⓒ 김영진, heakwan@ymail.com

클레멘타인 5

실제로 ‘자연의식치유법’의 효과를 본 ‘패밀리’도 있었다.
‘제천댁’이라고 불리는 ‘이모’가 가장 대표적인 케이스였다. ‘제천댁이모’는 간도 나쁜 데다가 신부전증 말기환자로써 반 년 이상 살 수 없다는 명시적 선고를 받고 명안진사에 처음 찾아왔다. 그녀는 단식과정에 참여했고, 이사장으로부터 특별지도도 받았던 모양이었다. 6개월 후에 병원으로 진단을 다시 받으러 갔을 때 그녀를 치료하다 포기했던 의사들이 일제히 ‘놀라자빠졌다’는 것이 하나의 전설처럼 회자됐다. 그녀의 불치병이 정상으로 회복되어 있었기 때문이었다. 단식원 ‘손님들’에게 그 말을 할 때 그녀는 울었다.

일찍이 남편과 헤어지고 자식들의 소식조차 모른 채 살아온 사고무친한 여자였다. 덤으로 새로운 생명을 얻은 그녀는 전 재산에 해당하는 스물몇 평 아파트 전셋값을 빼들고 명안진사로 들어와, 자기같이 고통받는 다른 이들을 위해 여생을 바치겠다면서, 스스로 부엌데기를 자원했다. 전셋값을 통째로 명안진사에 바쳤음은 물론이었다.
단식원에 들어온 사람들은 보통 ‘손님’이라고 불렸다.

예수 그리스도가 40일 동안 광야에서 금식기도를 한 다음 하느님의 아들로 거듭났다거나 부처가 6년여에 걸친 절식과 금식의 고행을 통해 마침내 무상의 경지를 얻었음은 모두 아는 사실이었다. 이슬람을 창시한 마호메트 또한 사방이 막힌 동굴에서 금식기도를 함으로써 가브리엘 천사를 만나고 나아가 메시아로 태어나게 된 것도 그랬다. 단식은 인체에 해로운 잉여지방을 태워 없애고 아울러 근본적 병소(病巢)와 삿된 기운까지 소멸시켜 어긋난 인체의 유기체적 구조를 복원하는 데 탁월한 효과를 볼 수 있다는 설명을 들었다. 현대의학이 포기하다시피한 당뇨, 고혈압, 각종 심인성질환을 바로잡을 수 있다는 것이었다. 백주사는 더 나아가 단식으로 빙의령(憑依靈)조차 잡을 수 있다고 장담했다. 원래 귀신이란 곰팡이가 음습한 곳을 좋아하듯이 몸의 좋지 않은 곳에 기생하는데 단식을 하면 기운이 공급되지 않아 이것들도 짐을 꾸려 떠나거나 소멸한다는 말이었다.

단식기간은 사람마다 모두 달랐다.
기간을 정하는 것은 이사장만의 권한이었다. 건강한 단식자는 받지 않았다. 입주할 수 있는 자격은 엄격한 심사를 거쳐 주어졌다. 명안진사의 단식과정에 드는 사람들은 모두 치료가 어려운 병에 걸렸거나 혼자 사는 쓸쓸한 ‘손님’이 많았다. 죽어가는 노인들도 있었다. ‘손님’들은 단식기간에 명상하는 법을 배우면서 시시때때 이사장의 설법을 들었다. 이사장의 설법에 감동해 우는 사람들도 많았다. 특히 모든 병이 자기 자신의 삿된 정신으로부터 나오므로 자기 자신의 ‘명안’으로 치유할 수 있다고 강조하는 대목에서 감동적 분위기는 극점에 다다랐다. ‘손님’들 중에서 단식과정을 끝내고 ‘패밀리’가 되어 주저앉는 사람들도 있었다.

“의식이 뭡니까?”
이사장은 낭랑한 목소리로 물었다.
“사전적으로 보면 의식이란 외부로부터 자극받아 생기는 생각이라 하지요. 맞는 말이에요. 그러나 외부란 눈에 보이는 것만이 아니라는 점에 유의하셔야 합니다. 보고 만질 수 있는 것만이 세상의 전부인가요. 명안을 갖지 않으면 우리는 외부 세계의 미미한 일부만 볼 뿐이에요. 게다가 감정이란 것도 있어요. 감정은 의식의 그림자 같은 것인데, 어리석은 자는 그림자한테 제가 지켜야 할 의식도 통째로 잡아먹히고 말아요. 영혼도 갈래갈래 찢어져 있고 의식도 일엽편주로 흔들리면, 하극상이 일어나요. 감정이란 놈이 아예 제 주인인 의식을 잡아먹으려 들거든요. 죽을병이 생길 밖에요…….”
치유의 길은 한마디로 몸과 영혼을 일체로 합치는 곳에 있었다.

이사장은 그 점을 강조했다. 의식이 조각나면 몸의 모든 기관들이 유기체적 구조를 잃어 ‘병’에 저당 잡힌다는 논리였다. 그것이 자연의식치유법의 근간이었다. 아무리 수술을 하고 방사선을 들이대도 완전한 치유가 불가능한 것은 합일을 통한 정신적 명안을 갖지 못하기 때문이었다. 재물 같은 삿된 욕망에 집착하지 말라는 말도 그는 늘 덧붙였다.
“분열된 아상(我相)을 버리고 견성(見性)을 얻으셔야 삽니다.”
이사장의 결론은 그것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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