색소폰 불고 칵테일 만들어 주고 … 회장님 ‘끼’로 직원들 ‘기’살려요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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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 09면

행텐코리아의 쉬브쿠마 라마나탄 대표가 자신이 만든 칵테일을 선보이고 있다.

기업 최고경영자(CEO)들이 자신의 장기를 살려 직원들과 적극적인 스킨십에 나서고 있다. 직원들과의 소통을 통해 얻은 의견을 경영에 반영하면서 경영 효율성이 높아지는 것은 물론 직원들 사기도 높일 수 있기 때문이다.

 글로벌 의류 브랜드 행텐코리아의 쉬브쿠마 라마나탄(43) 대표는 사내에서 바텐더로 통한다. 매월 직원들을 위한 칵테일 파티를 자택에서 열고, 직접 칵테일을 만들어 대접해서다. 인도계인 라마나탄 대표가 칵테일을 배운 건 2004년부터다. 2002년 초 행텐코리아의 대표자리에 올랐지만, 직원들이 자신을 어려워하는 데다 부서 간 의견교환도 거의 없을 만큼 폐쇄적인 조직문화가 문제였다.

그는 “패션기업의 경우 다양하고 통통 튀는 의견이 많아야 하는데, 당시엔 너무 조용했다”며 “칵테일처럼 의견이 활발하게 섞이는 조직을 만들자는 취지에서 시작했다”고 말했다.

다양한 칵테일 제조법과 술의 역사 등은 독학으로 익혔다. 공부하는 틈틈이 서울 이태원의 단골 바에 들러 과외를 받았다. 2005년에는 아예 서울 삼청동 자택 지하에 33㎡(10평) 규모의 홈 바를 만들었다. 홈 바에서는 지금도 한 달에 한 차례 정도 직원들을 초대해 회식을 한다. 이 회사 마케팅팀 장유정 대리는 “회사에서는 할 수 없었던 이야기를 대표님과 나누거나 아이디어를 교환하는 유익한 시간이 된다”며 “직원 중 대표님표 칵테일을 마시지 못한 이는 거의 없을 것”이라고 말했다. 행텐코리아는 전 세계 72개 지사 중 최근 7년간 성장률 1위를 기록해, 올해 글로벌 본사가 수여하는 ‘2010년 글로벌 행텐 베스트 어워드’를 수상했다.

웅진식품 유재면 대표(가운데)가 사내 밴드 멤버와 함께 포즈를 취하고 있다.

 웅진식품 유재면(51) 대표는 2006년부터 사내 방송에 출연해 색소폰을 불고 있다.

 대표 취임 첫해인 2005년 당시 이 회사의 매출은 1200억원. 2000년의 절반 수준으로 매출이 줄어들어 직원들의 사기도 바닥에 떨어져 있었다. 그는 “직원들의 기를 살리기 위해 무엇이든 해야 할 것 같았다”고 회상했다. 색소폰 초보자지만 2006년 가을부터 음악학원에 다니며 연주를 배웠다.

최고경영자가 매월 사내 방송에 출연하며 솔선해 망가지는 등 진솔한 모습을 보이니 굳어 있던 조직 분위기가 바뀌기 시작했다. 사원들도 신청곡과 사연을 내며 이에 화답했다. 유 대표는 2008년부터 직원들과 사내 동호회인 ‘신바람 밴드’를 결성해 활동 중이다. 이 회사의 올해 매출목표는 2000억원이다.

 제약회사인 한국MSD의 현동욱(46) 대표는 최근 케이크 만들기에 한창이다. 현 대표가 케이크 만들기에 빠진 것은 지난 8월 임직원 자원봉사 프로그램인 ‘위싱 케이크’ 만들기에 동참하면서부터다. 이후 주요 회사 기념일이나 직원 생일 등에는 현 대표가 만든 케이크를 전달하는 것을 목표로 하고 있다.

 웅진코웨이의 홍준기(52) 사장은 매월 한 차례씩 포장마차 사장으로 변신한다. 서울 중구 순화동 웅진코웨이 본사 앞에 포장마차를 차려놓고 홍 사장이 직접 안주와 술을 판다. 일반 포장마차와 비슷한 인테리어와 메뉴를 갖췄다. 손님은 전국에 있는 영업조직과 본사 임직원들이다. 술과 안주는 별도의 가격이 정해져 있지 않다. 대신 포장마차를 찾은 직원들이 자발적으로 돈을 내면 그 돈을 모아 사회공헌활동에 사용한다.

 이 회사 강윤구 대리는 “사장님이 직접 나서서 직원들과 소주잔을 기울이는 분위기만으로 직원들의 만족도가 엄청나게 높아지는 것 같다”고 말했다. 지난해 1조4100억원대 매출을 올린 이 회사는 올해 매출액 1조5300억원, 영업이익 2280억원을 달성할 계획이다.

이수기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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