日관객 사로잡은 최승희-김매자 춤세계

중앙일보

입력

지난 16일 도쿄 외곽 사이타마 예술극장은 놀라움과 가벼운 흥분으로 들떠 있었다. 사이타마 예술극장이 2년에 걸쳐 펼치고 있는 사이타마 국제 필름 페스티벌 제4부 개막행사로 열린 한국의 무용가 김매자(창무예술원 이사장) 의 공연과 일본 다큐영화 감독 후지하라 도모코 감독의 '전설의 무희 최승희-김매자가 잇는 민족의 혼' 상영이 객석을 가득 메운 8백여 관객을 사로잡았기 때문이다.

공연과 상영이 끝난 후에도 일본관객들은 극장 밖으로 나서지 못하고 로비에서 서성거리며 최승희와 김매자에 대한 이야기를 그칠 줄 몰랐다.

이들에게는 일제강점기에 민족의 한을 춤으로 승화시켰던 최승희의 예술혼이나 민족정서를 현대적으로 계승하는 김매자의 작품세계가 모두 충격적으로 다가왔던 것이다.

일본의 대표적인 여성감독이자 제작자인 도쿄 이와나미홀 지배인 다카노 에츠코가 지난해 김매자의 춤에 매료돼 한국무용에 관한 성찰을 보여주기 위한 기획으로 지난 2월부터 촬영에 들어간 '전설의 무희‥' 는 한마디로 김매자를 통해서 다시 만난 최승희, 아니 최승희를 통해서 본 김매자라고 할 수 있다.

김매자가 일본국립근대미술박물관과 도쿄화랑 등 최승희를 모델로 한 작품을 찾아가는 것으로 시작되는 영화는 계속 이들 두사람을 비교해서 보여준다.

주변인물의 인터뷰와 작품을 촬영한 화면을 통해 한국춤의 어제와 오늘을 드러냈다. 후지하라 감독은 최승희가 세계각국의 춤을 차용해 독특한 새로운 춤세계를 만들었던데 반해 김매자는 좀더 한국의 전통에 바탕을 두고 있다는 차이를 말하면서도, 한이 담긴 민족적인 춤이라는 점과 당대에 매우 현대적인 춤이라는 점에서 비슷하다는 점을 분명히 보여주었다.

개막공연에 참석한 이연숙 전 정무장관관과 패션디자이너 이영희씨는 "한국에서도 시도된 적이 없는 이같은 영화가 한국이 아닌 일본감독에 의해 나온 것이 아쉽고 부끄럽다" 고 말하기도 했다.

영화상영에 앞서 펼쳐진 김매자의 '일무' 공연 장면은 이 영화 기존필름에 덧붙여진 후 최종편집돼 도쿄영화제에 출품될 예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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