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해 수익 26조, 2년째 사상 최대 … 삼성보다 더 많이 벌었다”

중앙선데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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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7호 22면

지난달 초 전광우(61·사진) 국민연금공단 이사장에게 해외에서 급한 연락이 왔다. 발신자는 영국의 조지 오즈번 재무장관이었다. “꼭 만나고 싶으니 시간을 내줄 수 없겠느냐”는 내용이었다. 지난 5월 영국에서 38세의 나이로 124년 만에 최연소 재무장관으로 발탁된 그는 과감한 금융·재정 개혁을 추진하느라 몹시 바쁜 일정을 보내고 있었다.

취임 1년 맞은 전광우 국민연금공단 이사장

두 사람의 만남은 주요 20개국(G20) 서울 정상회의가 한창이던 지난달 11일 이뤄졌다. 이 자리에서 오즈번 장관은 간절한 부탁을 해왔다. “한국 국민연금이 내년 7월 미국 뉴욕에 첫 해외 사무소를 연다는 소식을 들었습니다. 두 번째 해외 사무소는 반드시 런던에 내주십시오. 런던은 유럽 최대의 금융 중심지가 아닙니까.” 전 이사장은 최대한 예우를 갖추면서도 즉답은 피했다. “국민연금은 이미 런던에 있는 HSBC 본사 건물도 1조5000억원에 샀고 개트윅 공항 등에도 투자했습니다. 영국의 개혁이 성공해야 국민연금의 투자도 성공할 수 있습니다. 우리는 같은 배를 탄 처지입니다.”

지난 10일 오전 서울 종로 영풍빌딩 국민연금 국제업무센터에서 전 이사장을 만났다. 지난 2일로 취임 1년을 맞은 그는 “국민연금이 국내외 금융시장 등에서 굴리는 돈은 지난 7월로 300조원을 돌파해 ‘세계 4대 연기금’으로 떠올랐다”며 “오즈번 장관의 부탁은 국민연금의 국제적 위상이 크게 높아졌음을 보여주는 단적인 사례”라고 말했다. 전 이사장은 또 “기금 수익률이 평균 1%포인트 높아지면 연금고갈 시기가 9년 늦어지고, 반대로 1%포인트 낮아지면 5년 빨라진다”며 “해외 부동산 등 고수익 투자 대상을 발굴하는 것은 선택이 아니라 필수”라고 강조했다.
 
운용인력 절반이 이사장보다 연봉 더 받아
-취임 1년을 축하한다. 그동안 가장 보람 있었던 일을 꼽는다면.
“햇수로는 2년이고, 내년 1월이면 3년차가 된다. 본래 장관이나 기관장은 그렇게 계산한다고 하더라.(웃음) 가장 큰 보람은 국민연금이 대한민국에서 제일 돈을 잘 버는 기관이 된 것이다. 기금운용 수익금은 지난해 26조2000억원으로 사상 최고였고, 올 들어 지난달 말까지는 잠정 집계로 25조원에 달했다. 이런 추세라면 무난히 지난해 기록을 갈아치울 것으로 보인다. 민간기업 중 최고라는 삼성그룹이 지난해 전 계열사를 합쳐 17조7000억원의 순이익을 냈다. 물론 고용창출 효과가 높은 제조업과 금융시장에 주로 투자하는 자산운용은 본질적인 차이가 있긴 하다. 그래도 돈은 같은 돈이 아닌가.”

-비결은 뭔가. 주가가 많이 오른 덕분인가.
“솔직히 지난해는 금융위기 이후 주가가 50%나 급반등한 덕을 봤다. 그 바람에 딴 것은 볼 것도 없었다. 하지만 올해는 주식뿐 아니라 골고루 수익을 올렸다. 특히 해외 부동산·자원 등 대체투자에서 채권 수익률의 배 이상을 올리고 있다. 수익의 내용이 구조적으로 좋아진 것이다. 취임 후 기금운용의 문화와 패러다임을 바꾸는 것에 역점을 뒀다. 국내 채권 중심의 투자전략에서 벗어나 해외 투자 등을 적극적으로 늘리도록 했다. 자연계에서도 태풍이 없으면 생태계가 쇠퇴한다고 한다. 한번 완전히 뒤집어 놔야 생태계가 더욱 활성화된다. 이 시점에 나 같은 사람이 맡은 사명이 그거라고 생각했다.”

-기금의 평균 수익률은 얼마나 되나. 금액으로 최고조에 달하는 시기는 언제인가.
“과거 20년간 평균 수익률이 7% 수준이다. 장기 재정추계를 한 결과 2043년에 2400조원으로 정점에 달하고 현재 시스템을 유지할 경우 2060년이면 고갈되는 것으로 나타났다. 기본 가정이 연평균 수익률 6~7%인데 사실 그게 쉽지 않은 일이다. 채권 위주로 투자하면 연 3~4%밖에 되지 않는다. 투자 다변화를 적극적으로 해야 한다. 외국 주요 연기금의 주식·대체투자 비중은 대개 50%가 넘는다. 우리도 하루아침에는 되지 않겠지만 점진적으로 주식과 해외 투자의 비중을 확대해야 한다.”
(국민연금의 2011년 기금운용계획에 따르면 1000원이 있으면 ▶국내 채권 635원(63.5%) ▶국내 주식 180원(18%) ▶해외 주식 66원(6.6%) ▶해외 채권 41원(4.1%) ▶대체투자 78원(7.8%)의 비율로 투자한다는 목표를 세웠다. 올해에 비해 국내 채권은 43원이 줄고 국내 주식(14원)과 해외 주식(15원), 대체투자(14원)는 약간 많아졌다. 다만 금융시장 상황에 따라 실제 투자 비율은 목표치보다 다소 높거나 낮아질 수 있다.)

-주식이나 해외 부동산 등에 투자하는 것에 대해 불안하게 보는 시각도 없지 않다.
“간혹 금융 마인드가 부족한 분들이 이런 말을 한다. ‘기금은 안정성이 제일 중요하니 국채 위주로 투자해라’. 그럴 때마다 답답한 마음으로 대답한다. ‘그럴 수만 있다면 오죽 편하겠나’. 금융에는 ‘공짜 점심’이 없다. 수익을 키우려면 어느 정도 위험을 감수해야 한다. 저금리 시대에 채권 위주의 투자로는 수익률이 제대로 나오지 않는다. 과거처럼 소극적인 투자는 기금 고갈의 시기를 앞당길 뿐이다.”

(국민연금은 지난해 6월 이후 영국·호주·독일·프랑스·일본에서 3조5660억원을 주고 8건의 부동산을 사들였다. 지난 10월에는 미국 최대의 석유운송 파이프라인 업체인 콜로니얼 파이프라인의 지분 23.44%를 인수해 2대 주주가 됐다. 투자 금액은 10억 달러 이상인 것으로 알려졌다.)
 
“주주권 행사는 중장기 과제로 신중 검토”
-해외 투자에서 고수익을 올리는 것은 말처럼 쉽지 않다. 최고 수준의 전문인력이 필요하지 않나.
“당연하다. 금융 인프라의 핵심은 뭐니뭐니 해도 사람이다. 최고의 펀드매니저들을 뽑아서 훈련시키고 오래 붙잡아두는 것이 필수적이다. 현재 국민연금 출범 이후 단일 규모로는 최대인 24명의 자산운용 인력을 뽑는 절차를 진행 중이다. 공공기관에서 인력정원(T/O)을 한꺼번에 24명이나 늘리는 작업은 쉽지 않았다. 채용보다 중요한 것은 보상 시스템이다. 최고의 대우를 해줘야 최고의 전문가들이 온다. 공공기관이란 한계는 있지만 최고경영자(CEO)로서 지속적인 노력을 기울이고 있다.”

-그러다 보면 이사장보다 연봉이 많은 직원도 나올 수 있겠다.
“이미 자산운용 인력 90여 명 중 절반 이상이 이사장보다 연봉이 많다. 담당 이사는 아마 연봉이 이사장의 두세 배는 될 거다. 기본급 외에 성과급이 있어서 그렇다. 내 개인적으로는 우리금융지주 부회장을 떠난 이후 자리를 옮길 때마다 연봉이 쪼그라든다.(웃음) 지금은 10년 전의 4분의 1 수준이다. 공직에서 국가에 봉사할 기회를 얻었다는 점에서 감사하게 생각한다.”

-최근 전업주부 등 의무적으로 가입할 대상이 아닌데도 자발적으로 국민연금에 가입하는 사람들이 늘고 있다고 들었다. 그중에는 서울 강남 아줌마들도 많다고 하던데.
“사실 강남뿐 아니라 전국적인 현상이다. 재테크에 밝은 강남 아줌마들이 앞다퉈 가입할 정도면 정말 좋은 제도가 아니겠느냐는 뜻에서 나온 말인 것 같다. 지난해 말까지 3만6000명에 불과했던 임의가입자가 최근엔 8만6000명에 달했다. 올 들어 11개월 동안 배 이상 늘었다는 얘기다. 국민연금 전체 가입자 수도 지난해 말 1862만 명에서 지난달 말에는 1925만 명으로 63만 명이나 증가했다. 그만큼 국민연금에 대한 신뢰가 높아졌다는 뜻으로 해석할 수 있어 이사장으로서 큰 보람을 느낀다.”

-앞으로 두세 달 뒤엔 상장사의 주주총회 시즌이 돌아온다. 국민연금의 주주권 행사는 어떻게 준비하고 있나.
“현재 국민연금이 5% 이상 지분을 갖고 있는 상장사가 140개 정도 된다. 4~5년 뒤에는 그 숫자와 지분율이 훨씬 늘어날 것이다. 이미 KT나 포스코 같은 회사는 우리가 최대주주다. 웬만한 대기업도 우리가 2대 주주거나 최소한 기관투자가 중 최대주주다. 특정 기업에 지분율 10% 이상은 투자하지 않는다는 내부 가이드라인이 있는데도 그렇다. 기본 철학은 국민연금은 어디까지나 재무적 투자자라는 것이다. 어떠한 경우라도 기업 경영에 개입이나 간섭하는 입장이 돼선 곤란하다. 의결권과 사외이사 파견 같은 문제는 중장기적인 과제로 매우 신중하게 접근할 생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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