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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리 대왕〉인간에 대한 진지한 염려

중앙일보

입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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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세기는 인간에게 사춘기의 이상성장과 같은 과속도의 세월이었다. 백세의 행운을 누린 노인이 있다 하여도 그의 정신은 자동차도 전기도 컴퓨터도 없었던 자연의 시대에 머물러 있을지 모를 일이다. 적응보다 빨리 앞서갔던 20세기를 정리하는 작업들이 곳곳에서 이뤄지고 있다. 금세기의 아픈 상처, 전쟁과 나치즘을 고발한 〈양철북〉의 작가 퀸터 그라스에게 아무런 이견없이 노벨문학상이 주어진 것도 스스로를 돌아보고 잘못을 반복하지 말자는 인간 의지적 노력 중 하나로 보여진다.

그렇지만 새로운 세기에 거는 기대는 희망만큼이나 절망도 큰 자리를 차지한다. 그 절망의 출발은 너무 지나치게 생각하는 인간 '호모 사피엔스'에 대한 불신과 두려움에서 비롯되는 것인지 모른다. 성선설보다성악설이 훨씬 이치에 맞아 보이는 그 기분나쁜 사실을 새삼 세기말에 환기시키는 영화가 바로 〈파리대왕〉이다.

1954년 윌리암 골딩이 발표하였으나 83년에 가서야 노벨문학상을 수상함으로써 빛을 발하게 된 〈파리대왕(Lord of The Flies)〉은 90년 다시 영상으로 태어났다. 영화는 핵전쟁을 피해 안전한 곳으로 옮겨 가던 수십명의 소년들이 비행기 사고로 바다에 추락하면서 정신 이상이 된 기장과 함께 무인도에 불시착하는 것으로 시작된다. 고립된 곳에서 서서히 드러나는 인간의 잠재된 야만성이 특히 사회화되지 않은 아이들을 통해 더욱 실감나고 적나라하게 표현되는 이 영화는 결코 두번 보고 싶지 않은 인간성에 대한 날카로운 염세주의의 칼날이다.

무인도에 도착한 이후 아이들은 제법 문명화된 모습으로 자신들의 상황을 해결해 나간다. 의회를 열어 의견을 수렴하고 구조받기 위한 방안도 마련하며 서로 협력하는 것 만이 살아갈 방법임을 인식한다. 하지만 시간이 흘러 구조에 대한 희망이 희박해지면서 힘의 논리를 앞세운 생존을 주장하는 쪽과 이성적 사고로 구조를 포기하지 않는 쪽과 대립이 생겨나게 되고 결국 지나치게 아름다운 무인도를 더욱 빛나는 낙원으로 만들었던 처음의 순수하고 지혜로웠던 아이들은 점차 공포스런 야만인 '호모 에렉투스'로 변해간다.

어찌보면 인간 본연의 모습일지 모를 잔인함과 유약함, 공포에 대한 두려움, 그를 극복하기 위해 만들어 내는 권력과 독재라는 형태는 세계대전 이후 인간성에 회의를 느낀 작가의 통렬한 비판이자 냉정한 자아성찰이다. 영화속에서 아이들의 유일한 문명의 수단이었던 안경은 부서지고 갈취되며 그 모든 잔인함을 불러 일으키는 공포의 상징 돼지머리는 무수한 파리들의 대왕이 되어 걸린 채, 독재에 항거하고 이성을 지녔으며 공포로부터 자유로웠던 세 아이들 중 둘을 죽음에 이르게 한다.

마지막 순간 어이없는 구조로 살아나지만 실낙원에 통곡하는 선의 대변자 랄프나 무너진 제국앞에 망연자실한 악의 실체 잭. 둘 모두 종국엔 가해자이자 피해자가 되는 〈파리대왕〉은 카멜레온 같은 인간의 이중성이 만들어 갈 뉴 밀레니엄에 바치는 진지한 염려를 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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