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 노트] 영월 책박물관의 최후 …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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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7면

정재숙
선임기자

강원도 영월의 1호 박물관인 책 박물관이 14일 문을 닫았다. 박대헌(57) 영월책박물관 관장은 이날 오전 11시 광전리 한 폐교에 자리 잡았던 책박물관 앞에서 스스로 폐관을 알렸다. 박물관 고을로 이름난 영월의 1호 박물관인 책박물관은 12년의 역사를 뒤로 하고 이렇게 조용히 문을 닫았다.

 책박물관은 1999년 폐교를 임대해 처음 문을 열 때부터 다른 지역의 관심을 더 많이 받았던 곳이다. 해마다 5월이면 열리던 책 축제엔 후원회원들이 제 돈 내고 찾아와 자원 봉사를 했다. 특별기획전과 세미나 등 수십 차례 문화행사가 열려 죽어가던 마을을 되살렸다. 한 지역에 박물관 설립의 열기를 지핀 중요한 문화 인프라가 이렇게 허무하게 사라질 수 있을까.

 박대헌 관장은 서울 경운동에서 고서점 ‘호산방’을 운영하며 『서양인이 본 조선』 『고서 이야기』 등을 출간한 이 분야 전문가. 평생 꿈이었던 책마을을 만들려 영월로 내려간 그는 책박물관을 중심으로 차근차근 준비 작업을 해왔다. 문제는 2006년 8월 영월군이 책박물관을 배제한 채 ‘책마을 선포식 및 사업 평가보고회’를 열면서부터였다. 공무원 위주로 돌아가는 문화행정에 비판적이었던 박 관장이 괘씸죄에 걸렸다는 이야기마저 흘러나왔다.

 이런저런 사정으로 불가피한 장기휴관이 이어졌고 그 뒤에도 여러 차례 재개관 노력을 기울였던 박물관 측은 결국 지난달 17일 박물관을 비워달라는 영월군의 통보를 받고 이날 공개적으로 폐관 성명을 내게 된 것이다. 이재현 영월군 문화관광계장은 “박물관 건물이 영월군 재산이라 장기휴관 상태를 방치할 수 없었다”며 “리모델링 상의 등으로 서너 차례 만났지만 이견을 좁힐 수 없었다”고 말했다.

 사립박물관의 운명이 이렇듯 행정 편의로 좌지우지 된다면 누가 박물관 건립에 뛰어들 수 있을까. 개인 재산과 평생을 던져 묵묵히 해나가는 박물관인들의 한숨이 더 깊어지지 않을까.

정재숙 선임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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