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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실의 순간을 찾아내는 안목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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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9면

이홍규
KAIST 교수·경영과학과

지난 10년은 참으로 격동의 세월이었다. 2000년 뉴밀레니엄의 꿈으로 밤하늘을 수놓았던 화려한 불꽃이 무색하게 세계경제의 하늘에는 암울한 그림자가 드리우고 있다. 100년 만에 찾아온 경제위기 앞에 시장의 합리성에 대한 기대는 무너졌고, 미국을 뒷받침해온 달러화의 힘은 사라지고 있다. 유럽은 재정위기의 전염이란 공포와 맞닥뜨리고 있다. 한국 또한 이 충격파를 비켜나기 어려웠다. 세계에서 가장 빨리 위기를 벗어난 국가란 칭송은 들었지만, 다른 나라와 마찬가지로 양극화의 심화와 고용 없는 성장에 시달리고 있고, 늘어난 국가부채와 가계부채가 경제운영을 크게 압박하고 있다.

 지금 우리는 21세기의 새로운 10년으로 들어서고 있다. 새로운 희망으로 들떠야 할 이 시기지만, 우리의 마음은 무겁기만 하다. 앞으로의 10년 또한 격동의 세월이 될 것으로 보이기 때문이다. 북한 변수도 그렇지만, 한 치 앞을 내다보기 힘든 세계경제, 세계에서 가장 빠른 고령화와 800조원의 가계부채의 짐을 짊어진 국내 경제, 모두 미래를 예측하기 힘든 불확실성에 노출돼 있다.

 모든 일엔 ‘진실의 순간’(moment of truth)이 있다 한다. 투우사가 성난 소 앞에서 가장 결정적 순간을 잡아내듯이 빨라도 안 되고 늦어도 안 되는 그런 순간이다. 시기가 달라지면 맥락이 달라지고 맥락이 달라지면 같은 결정이라도 결과가 다른 법이다. 중용에서는 이런 순간을 시중(時中)이라 했다. 불확실성이 클수록 정부에는 시중을 찾아낼 안목 있는 정책결정자들이 많아야 한다. 그러면 무엇으로 과연 그런 진실의 순간을 찾을 수 있을 것인가?

 첫째, 과욕이 없어야 한다. 세계 최고의 기업이라던 도요타는 성장에 정신이 팔려 품질을 챙겨야 하는 때를 잃었다. 정부가 내년 경제성장률을 5%로 전망한다고 한다. 일각에서는 심상치 않은 물가, 불안한 수출시장에 잠재성장률이 4% 이하로 떨어져 가는데 5%가 너무 높다는 의견도 있다. 성장률을 높게 잡고 경제를 운용하면 긴축정책의 때를 놓치기 쉽다는 점도 유념함이 필요하다고 보인다.

 둘째, 평균적 기대수치에만 의존하지 말아야 한다. 불확실성이 크다는 것은 그만큼 예측하기 어려운 검은 백조가 나타나기 쉽다는 뜻이다. 이 상황에서 안정적 환경에서처럼 평균적 예상치에 의존하는 것은 잘못이다. 때로는 과잉대응(overshooting)처럼 보일 조치도 필요하다. 가계부채 문제, 한계기업 구조조정 문제 모두 마찬가지다. 지금은 안정권이라도 최악의 상황에 대한 대비가 있어야 한다. 구조조정의 지연은 살아남을 기업까지 죽일 수 있고 결국 일자리까지 줄일 것이다. 이미 우리는 1997년 외환위기 때에도 그것을 목도한 바 있다. 건설업·금융업 등 모든 분야에서 좀 더 빨리 한계기업들의 구조조정이 이뤄져야 하는 이유다.

 셋째, 소통이 제대로 돼야 한다. 인간의 사고에는 자기가 믿고 싶은 증거만 찾는 ‘확증편향’의 오류가 있고 자신의 의견을 바꾸지 않으려는 경직성이 존재한다. 애덤 스미스는 『국부론』에서 자신이 아름답다고 생각하는 조각상을 만들어 파는 상인이 왜 망하느냐는 예를 들었다. 정책도 마찬가지다. 정부에 좋은 정책보다 국민이 옳다고 생각하는 정책, 단기적으로 좋은 정책보다 장기적으로 옳은 정책이 되어야 한다. 정책을 만들기에 앞서 진정 소통을 해야 하는 이유다. 사회적 신뢰는 취약하고 극단론이 과대 대표되는 한국 사회의 고질 구조 속에서 과연 어떻게 소통할 것인가 하는 고민이 정부에 있어야 한다.

 넷째, 사회의 지도층들이 좀 더 차분해야 한다. 일의 성과는 소리소문 없이 일을 챙겨나가는 데 있는 법이다. 위에서 차분해야 밑에서 일이 자신의 일이란 마음을 갖게 되고 자신의 더 많은 정보와 지혜를 위에 들려주는 하의상달(下意上達)형 소통이 일어나는 것이다. 더구나 우리 사회는 무슨 일이 생기면 그 일에 확 쏠렸다가 금방 잊어먹는 사회다. 그러니 개선이 쉽지 않고, 해야 할 일의 때를 잃는 것이다. 지도층일수록 차분하고 꾸준해야 하는 이유다.

 월스트리트 저널은 지난달 한국 경제를 두고 ‘기적이 끝났다’고 했다. 그러나 앞으로의 10년도 우리에게는 기적이 필요하다. 그렇지만 그 기적을 이루는 동인은 달라질 수밖에 없다. 지난 60년의 기적을 이뤄낸 것이 국민의 ‘잘살아 보세’라는 의지라면, 이제 이 불확실한 미래를 헤쳐 나가기 위해서는 무엇보다 지도층의 남다른 안목이 필요하다 할 것이다.

이홍규 KAIST 교수·경영과학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