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주교 사상 초유의 ‘항명사태’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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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진석(서울대교구장) 추기경의 4대 강 관련 발언 파장이 커지고 있다. 교단 내부의 조직적 질서가 단단한 천주교의 분열 양상마저 보이고 있다. 천주교 사제 20여 명은 13일 정 추기경의 서울대교구장 사퇴를 촉구하고 나섰다. 정 추기경이 8일 기자간담회에서 “천주교 주교단에서 4대 강 사업을 반대한다고 얘기한 것은 아니다”고 말한 데 대해 반발하면서다. 한국천주교에서 추기경에게 용퇴를 촉구한 건 유례가 없는 일이다.

 이들 신부는 이날 오전 서울 정동 프란치스코회관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정 추기경이 (4대 강 사업에 대한) 주교단의 결론에 위배되는 해석으로 사회적 혼란과 교회의 분열을 일으켰다”고 주장했다. ‘시대를 고민하는 사제들의 기도와 호소’라는 제목의 성명서에서 “정 추기경은 주교들과 평신도·수도자·사제에게 용서를 구하고 용퇴의 결단으로 그 진정을 보여주기 바란다”고 촉구했다. 성명서에는 김병상 몬시뇰, 문정현·함세웅 신부 등 천주교정의구현전국사제단 출신 신부들을 중심으로 25명이 서명했다. 이날 회견은 정의구현전국사제단이 10일 “정 추기경의 (4대 강 관련) 발언이 주교회의의 결정을 함부로 왜곡했다”는 내용의 성명서를 낸 데 대한 지지 차원에서 이뤄졌다.

 정 추기경의 발언을 둘러싼 천주교계의 갈등은 4대 강 사업과 관련한 주교회의의 공식 입장에 대한 해석이 엇갈리면서 비롯됐다. 한국천주교의 최고 의결기구인 주교회의는 지난 3월 “4대 강 사업이 자연환경에 치명적인 손상을 입힐 것으로 심각하게 우려하고 있다”는 입장을 냈었다.

 ◆“추기경은 주교회의 성명 설명한 것”=서울대교구 홍보국장 허영엽 신부는 이날 평화방송과 인터뷰에서 “정 추기경은 지난 3월 주교회의가 발표한 성명에 대해 자세하고 분명하게 해석한 것”이라며 “당시 성명에는 ‘반대’나 ‘중지’ 등의 표현이 없었다”고 말했다. 허 신부는 또 “추기경은 (주교회의의) 성명에 반대한 게 아니라 성명서 내용을 분명하게 설명해준 것”이라고 덧붙였다. 일부 사제의 반대 성명에 대해선 “정 추기경은 반대 의견도 충분히 듣겠다고 생각하는 것으로 안다”고 전했다.

 한편 한국천주교주교회의 이영식 미디어팀장은 “주교회의의 입장이 변경되거나 다른 논의를 할 계획이 없다”고 밝혔다. 한국천주교평신도사도직협의회 최홍준 회장은 “(정 추기경에 대한) 용퇴 주장은 원칙적으로 바람직하지 않다 ”며 “평신도 차원에서 별도 입장을 낼지 고려 중”이라고 말했다.

 정강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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