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뷰] 사직동팀 내사 지휘, 박주선 청와대법무비서관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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옷로비 의혹을 처음 수사했던 곳은 통상 '사직동팀'으로 일컬어지는 경찰청조사과였다. 사직동팀은 청와대에서 사정업무를 맡고 있는 법무비서관의 직접 지휘를 받는다. 박주선 청와대 법무비서관은 본지와의 인터뷰에서 “사직동팀 옷로비 사건 내사는 사직동팀이 자체 입수한 첩보를 바탕으로 시작했다”고 밝혔다.

박비서관의 이러한 주장은 지금까지 의혹이 제기돼 온 '대통령 부인 이희호 여사의 내사 지시설' '이형자씨 측근 목사들의 김태정 전 검찰총장 관련 투서설' 등을 일축하는 것이다.

박비서관은 또 연정희씨에게 전화해 '옷을 돌려주라'고 했다는 일부의 의혹에 대해서도 '사실무근'이라고 부인했다. 사직동팀 내사 자료 공개 여부에 대해서는 “특별검사가 요구해도 공식 수사기록이 아닌 내사기록을 공개할 수는 없다”고 밝혔다.

다음은 박비서관과의 일문일답.

─ 옷로비 사건에 대한 사직동팀 내사 배경은.

“1월13일 사직동팀이 입수한 첩보가 내사 시작의 배경이다.”

─ 첩보의 내용은 무엇이었나.

“연정희씨가 '앙드레김'에서 2천2백만원어치의 옷을 구입하고 라스포사에서 3천5백만원짜리 밍크코트를 구입했는데 배정숙씨와 정일순씨가 이형자씨에게 옷값 대납을 요구했다는 내용이었다. 이씨가 '처음에는 2천2백만원 내라더니 또 그만큼 더 내라 하느냐'면서 거부해 연씨가 옷값 5천7백만원을 지불했다는 첩보였다.”

─ 내사해야겠다고 생각한 이유는 무엇인가.

“현직 검찰총장 부인 관련 사항이고 거론되는 액수가 지나치게 컸다. 또 단순히 '누가 어디서 옷을 자주 사 입는다'는 수준이 아니라 정황 자체가 매우 구체적이어서 사실일 가능성이 높을 것이라는 느낌이 들었다.”

─ 언제까지 내사가 진행됐나.

“내사 기간은 1월14일부터 23일까지였다. 내사 시작 사실은 김중권 청와대비서실장에게 보고했고 종결 후 2월5일경 대통령에게도 보고했다.”

─ 수사 결과에 대한 김대통령의 언급은 없었나.

“조사 결과 실체가 없는 것으로 판단돼 내사종결키로 했다고 보고했더니 아무 언급이 없었다.”

─ 내사 당시 부인들이 조사받은 데 대한 강인덕 장관이나 김태정 총장의 반응은.

“강 전 장관측은 몸도 성하지 않은 배씨를 조사한다며 사직동팀에 항의전화를 걸어왔다. 김전 총장은 내사가 마무리될 즈음 나한테 직접 전화해 '나한테는 내사 들어간다고 귀띔이라도 해줄 수 있는 것 아닌가'라며 유감을 표시했으나 사실을 알릴 수 없는 내 입장을 설명하니 이해하더라. 그러면서 '나도 대충 그런 소문 도는 것을 들었는데 이 기회에 명명백백히 철저히 수사해 달라'고 했다.”

─ 이희호 여사가 내사를 지시했다는 소문이 있는데….

“전혀 그런 일 없다. 내사 시작은 사직동팀의 첩보 보고에 따른 것이지 이희호 여사가 목사들의 얘기를 듣고 지시했다는 것은 전혀 사실이 아니다.”

─ 이형자씨가 교회 목사들을 동원해 김태정 전 검찰총장 관련 투서를 청와대에 보냈다는 소문도 있다.

“전혀 그런 일 없다. 그런 투서라면 당연히 법무비서관실로 접수되고 내용 검토 후 필요하다면 사직동팀에 넘긴다. 다만 사직동팀 내사 과정에서 이씨가 목사들에게 김 전 총장을 비난하고 다녔다는 사실은 확인했다.”

─ 사직동팀의 내사 시작 전에 연정희씨에게 전화해 '옷을 돌려주라'고 했다는데.

“전혀 그런 일이 없다. 그 무렵 연씨에게 전화한 적이 없다. 집사람끼리 친하고 총장과 내가 함께 일한 적이 있기는 하지만 나는 총장을 '선배'라고 부르지 단 한번도 '형님'이라 부른 적이 없다. 말이 안되는 얘기다.”

─ 배정숙씨는 조사 당시 이형자씨와 대질시켜 주지 않았다고 말했는데.

“1월17일 사직동팀이 배씨 집 주변 '곰의 집'에서 배씨를 처음 만났는데 주변이 소란스러우니 집으로 가서 얘기하자고 해 집으로 갔다. 다음날인가 배씨가 조사받다 각혈하며 쓰러져 한국병원으로 실려갔다. 그후 사직동팀에서는 수사를 마무리하려고 수사관들이 병원으로 두번이나 찾아갔다.

그러나 배씨측에서 절대 안정이 필요하다면서 면회를 사절했다. 당시 병원에는 연정희씨와 조복희씨가 문병와 있었다. 그러면서도 수사관들을 만나는 것은 꺼렸다. 그래 놓고 지금 와서 사직동팀이 이씨와 대질도 안 시켜 주더라고 하는 것은 어불성설이다. 배씨 본인이 수사를 거부했다고 봐야 한다.”

─ 내사가 시작된 것이 1월14일이라고 하나 이형자씨는 이미 1월7, 8일경 사직동팀의 조사를 받았다고 주장하는데.

“거짓말이거나 착각일 것이다. 사직동팀의 횃불선교회 방문 조사 때 이씨가 1월 초의 날짜별 행적을 기억하면서 '8일인가 9일인가 확실하지는 않지만 교회 목사들과 점심을 먹었다'고 기억했다. 이형자씨는 그것을 '손이 떨려서 안되겠다'면서 여비서에게 대신 진술서를 쓰도록 했다. 그래 놓고 청문회에서는 그날 조사받은 것으로 얘기하고 있다. 그러나 그때는 사직동팀이 사건의 내역도 모르고 있었다.”

─ 사직동팀 조사시 통화기록을 확인했나.

“시내전화는 통화기록 확인이 불가능하고 핸드폰과 일반전화, 또는 핸드폰간의 통화는 확인 가능하다. 당시 우리도 서로 얘기가 다른 것을 학인하기 위해 통화기록 확인을 시도했다. 확인된 것은 이씨와 배씨간 통화 한통이었던 것으로 기억된다.”

─ 청문회 때도 당시의 조사자료를 공개하지 않는 이유는.

“사직동팀은 수사기관이 아니라 내사기관이다. 내사자료는 누구에게도 공개하는 것이 아니다. 국회 청문회에서 제출하라고 할 때 제출하지 않은 것도 그 때문이다. 선례를 만들어서는 안된다는 것도 이유다. 진정이나 투서를 내사하다 보면 온갖 것을 다 조사하는데, 그것이 공개되면 개인의 프라이버시나 명예훼손 부분은 어떻게 되겠나. 특별검사가 요구해도 자료는 줄 수 없다.”

월간중앙(http://win.joongang.co.kr/) 제 287호 1999.1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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