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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재오 특임장관, “개헌, 되든 안 되든 … 내년 상반기 중 결론 내자”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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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2면

“아무리 생각해도 이 길밖에 없다. 되든 안 되든 이건 내 정치 일생의 마지막 소신이다.”

 이재오 특임장관이 ‘분권형 개헌’을 꼭 해야 한다며 한 말이다. 그는 10일 중앙일보와 단독 인터뷰를 한 자리에서 “여야가 권력의 틀을 바꾸자는 합의만 하면 내년 상반기 중 개헌이 가능하다. 개헌안들이 이미 나와 있는 만큼 개헌 논의 과정이 의외로 빨라질 수 있다”고 말했다. ‘민주당이 개헌을 반대하지 않느냐’는 물음엔 “분권형 대통령제에선 민주당도 국정에 참여할 기회가 열리는 것 아니냐”고 답했다. 그러면서 “내년 상반기를 넘기면 총선(2012년 4월) 열 달 전이 되는 만큼 계속 개헌을 얘기하면 정국이 혼란해진다. 따라서 내년 상반기에 결론을 내야 한다. 되면 되는 것이고, 안 되면 개헌 논의를 끝내야 한다”고 말했다.

 -민주당은 이 장관을 예산안 강행 처리의 배후라고 말한다.

 “나도 국회 본회의장으로 따라 들어가기 바빴는데 뭘 진두지휘하나. 그때 얼굴도 긁혔다(이 장관의 왼쪽 눈 옆에는 누군가의 손톱에 긁힌 상처가 남아 있었다). 우리로선 불가피하게 통과시켰지만 국민들 보기엔 좋지 않은 모습이다. 우리도 야당 했을 때 강경투쟁을 하기도 했지만 지금 생각하면 잘못됐다. 싸움을 하게끔 만드는 구조는 놔 두고 여야가 바뀌자 내용은 안 바뀐 채 공수만 교대한 셈이다.”

 -개헌으로 정치구조를 바꾸자는 것인가.

 “지금은 이기는 자만 전부를 갖는다. 진 자는 전부를 잃든지, 아니면 승복하든지 해야 한다. 승복하기도 싫고 전부 잃기도 싫으니 싸우는 것이다. 이를 막으려면 권력을 나눠야 한다. 권력을 독식하지 않고 상생하는 정치의 틀로 바꿔야 한다. 대통령이 아무리 훌륭해도 나라 안팎의 그 많은 일을 다 책임지면서 성공할 대통령은 없다.”

 -총리를 국회에서 뽑는 4년 중임의 분권형 대통령제를 주장하는데 순수 내각제는 안 되는 것인가.

 “순수 내각제는 부적절하다. 우리가 대통령 직선제를 쟁취하기 위해 얼마나 민주화 투쟁을 했나. 더구나 분단국가에서 국방·안보·외교·통일 문제는 정쟁으로 삼을 수는 없는 만큼 (내각이 아닌) 대통령에게 군통수권을 줘야 한다. 분권형 대통령제가 분단 상황에 있는 우리가 지향할 수 있는 최선의 체제다.”

 -분권형 대통령제의 이점은 무엇인가.

 “국방·외교·통상 등 외치(外治)는 국민이 뽑은 대통령이 하고, 민생·복지 등 내치와 관련된 건 국회에서 꾸민 내각이 책임지는 게 분권형 대통령제다. 만일 한 정당이 국회 의석의 과반수가 되면 혼자 내각을 꾸리고, 안 되면 2당·3당과 연정을 해야 한다. 권력과 책임을 나누는 것이다. 분권형 대통령제를 하면 대통령을 만들지 못한 정당도 원내 제1당이 될 수 있고, 1당이 안 돼도 대통령을 낼 수 있다. 이걸 하면 동서 갈등도 해소할 수 있다.”

 -대통령과 총리가 갈등을 일으키면 혼란이 생기지 않겠는가.

 “법에 충돌 방지나 역할 분담을 위한 장치를 두면 된다. 예컨대 초대 총리는 1년 이내에 바꾸지 못한다거나, 내치 분야에서도 특정 분야는 (내각이) 대통령과 협의하도록 하고, 외치의 경우 파병 때처럼 국회 동의를 받게 하는 등의 장치를 두는 것이다.”

 -한나라당 내 친박 진영에선 이 장관의 개헌론에는 의도성이 있는 것 아니냐고 얘기한다.

 “애들 말로 팔짝 뛰겠다. 개헌한다고 해서 박근혜 전 대표가 당내 경선에 나서는 데 무슨 지장을 받느냐. 대통령 하겠다는 분들은 (개헌이) 자기들 힘을 뺀다고 하는데 오히려 힘을 강화해 주는 거다. 대통령이 배추값 걱정하는 것보다 남북 통일 문제를 따지는 게 더 힘있는 일 아닌가.”

 -박 전 대표를 만나서 개헌 얘기를 할 생각은 없나 .

 “같은 당에서 정치하는데 못 만날 일이 없다. 자연스레 (개헌) 분위기가 무르익고 이에 대한 찬반이 분명해지면 만날 것이다. 만나서 터놓고 얘기하겠다.”

이재오 특임장관과 캐슬린 스티븐스 주한 미국대사(오른쪽)가 11일 오전 미국대사관 자전거동호회, 은평구 자전거동호회 회원들과 함께 서울 월드컵공원 평화의 공원에서 만나 인사를 나누고 있다. 이들은 이날 서울숲까지 함께 자전거를 탔다. [뉴시스]

 -민주당 박지원 원내대표가 국회에서 새해 예산안이 통과된 다음 “나는 개헌 찬성론자였지만 이젠 개헌은 불가능하다”고 했다.

 “엊그제 국회에서 여당 단독으로 예산안을 처리했다. 그런 상황에서 개헌 얘기가 나왔는데 내가 야당 소속이라도 ‘그래 개헌 논의하자’고 하지는 않을 것이다. 하지만 남북 간에도 대화하자는 판에 여야 간에 대화를 못 하겠나.”

 -예산안이 처리된 다음 날(9일) 개헌 얘기를 한 이유는.

 “한반도선진화재단이 오래전 정치 선진화를 주제로 강연해 달라고 한 날이 9일이다. 예산안이 처리되자 보란 듯이 개헌하자고 한 건 아니다.”

 -이명박 대통령도 같은 생각인가.

 “이 대통령은 올해 8·15 경축사에서 ‘필요하다면 개헌도 국회에서 논의할 수 있을 것’이라고 얘기했다. 하지만 정권 연장용이라고 오해받을 수 있어 내용은 말하지 못한다. 나도 자세한 얘긴 대통령에게 하지 않았다. 이 대통령은 다만 이재오가 개헌을 주장하고 있다는 사실을 알고 있다.”

 -이 장관이 2012년 대선에 뛰어들 것이라는 관측이 나오는데.

 “예산안 통과로 어수선한 판국에 그런 얘기하면 ‘저 사람 정신 나갔다’고 한다. 지금 내 관심은 내년 정치를 어떻게 풀까, 대통령을 어떻게 도울까에 가 있지, 내가 어떻게 할지엔 솔직히 관심이 없다.”

 -김정일 국방위원장을 만나 할 말을 하고 싶다고 말한 적이 있는데 그때가 오는 건가.

 “북한에서 포까지 쐈는데 그럴 기회가 점점 멀어지는 것 아닌가. 그리고 남북 문제는 통일부가 전담한다. 결국은 김 국방위원장을 대화의 장으로 끌어내야 하는데 그러려면 자기 한계를 느끼도록 해야 한다. 도발에 따른 손해는 결국 북한이 본다는 것을 보여주도록 국론이 하나가 되는 게 중요하다.”

 -템플스테이 지원 예산이 삭감돼 파장이 크다.

 “서로 챙길 것으로 생각했는데 막상 열어보니 빠졌다. 의도적으로 뺀 것도 아니고 그야말로 사무착오다. 예산 삭감 자체는 있을 수 있는데 종교 편향으로 비춰지는 게 문제다. 불교계에 삭감된 예산 60여억원을 보전해 줄 방법이 있을 것이다.”

 -지난 7일로 특임장관 취임 100일이 됐는데 소회가 있다면.

 “취임 후 줄곧 지하철로 출근하고 있는데 이제는 함께 사진을 찍자는 분도 있다. 연신내역에서 새벽 6시3분차를 타는데 이 시간대는 대부분 서민들이 탄다. 출근시간에 장관이 지하철을 타는 게 어려운 분들에겐 ‘장관도 똑같네’라며 위로가 된다고 하더라.”

만난 사람=이상일 정치 데스크
정리=채병건 기자, 사진=김경빈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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