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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김진의 시시각각

흔들리는 합참의장과 참모총장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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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8면

김진
논설위원·정치전문기자

프랑스 육군의 영웅 나폴레옹을 부하들은 ‘10만 군대’라고 불렀다고 한다. 그만큼 최고지휘관은 막중한 존재다.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최고지휘관은 군대의 생사(生死)에 핵심적인 역할을 한다. 그런데 지금 60만 한국군의 최고지휘부는 위기에 처해 있다. 능력과 도덕성에 대한 신뢰의 위기다.

 한국군의 평시 작전지휘권은 합참의장에게 있다. 지난 11월 23일 북한군의 포격으로 연평도 섬마을이 불탔다. 주민의 비명이 청와대에까지 들리는 듯했다. 청와대에 따르면 대통령은 전폭기로 폭격하는 방안에 대해 물었다고 한다. 그런데 한민구 합참의장은 확전과 민간인 대량 피해 가능성을 거론하며 전폭기 폭격이라는 결정을 내리지 않았다. 물론 대통령은 군 통수권자이므로 자신이 최종적으로 결정하면 된다. 그러나 합참의장이 적극적으로 나서지 않는데 군사전문가도 아닌 대통령이 “폭격”을 명령하는 건 쉽지 않을 것이다. 군 출신 대통령이라면 그리했을 것이다. 그러나 이명박 대통령은 기업가와 서울시장 출신이다. 기업가와 서울시장이라고 해서 군사전략에 해박하지 말라는 법은 없지만 하여튼 이 대통령은 그러했다. 그러므로 사태의 첫 번째 책임은 합참의장에게 있다.

 전폭기로 폭격하지 못한 건 대통령과 한국군에 천추(千秋)의 한(恨)으로 남게 되었다. 전폭기 폭격은 북한의 50여 년 도발 역사에서 처음으로 한국이 당당하게 응징할 수 있는 기회였다. 그런데 한국은 그 황금 같은 기회를 놓쳤다. 자위권이라는 불변의 원칙이 있는데도 교전규칙이라는 굴욕의 최면에 빠진 것이다.

 한 의장은 지난 7월 초 합참의장에 올랐다. 그때는 천안함 사태로 군의 사기가 바다 밑에 가라앉았을 때였다. 국회 국방위 인사청문회에서 의원들은 한 후보에게 강력한 결의를 간구(懇求)했다. 육군 참모총장 출신 이진삼 의원(선진당)은 육사 16년 후배인 후보자에게 다그쳤다. “어떤 북괴의 도발이 있더라도 합참의장은 강력하게 응징해요.” “잘 알겠습니다.” “깨끗하게 응징하고서 모든 책임은 나한테 있다고 옷 깨끗이 벗어버려.” “잘 알겠습니다.” “우리 그런 각오로 했잖아.” “각오가 돼 있습니다.”

 그 각오는 연평도 포연(砲煙)속으로 사라지고 없다. 한 의장의 할아버지는 구한말의 영웅적인 의병장 한봉수다. 그는 수십 명의 유격전 부대를 이끌고 강원·충청 지역에서 일본군을 공격했으며 33승1패를 기록했다고 한다. 조국과 동포가 일본에 유린당하는 마당에 그는 머뭇거리지도 두려워하지도 않았다.

 육군 참모총장은 육군의 총수이자 합참의장 후보 1순위다. 그런데 지금 황의돈 총장은 ‘60억짜리 빌딩’ 포탄을 맞고 있다. 그는 국방부 대변인(준장)이던 2002년 8월 국방부 근처에 있는 2층 건물을 샀다. 고도제한이 완화되자 은행대출로 6층 건물을 지었다. 2002년 8월이면 어떤 시절이었나. 두 달 전 북한군의 서해교전 기습으로 함정이 침몰하고 장병 6명이 산화했다. 김대중 대통령 정권과 군 수뇌부의 유약한 대처에 국민의 분노가 끓고 있었다. 그때 한국군의 대변인은 건물을 샀다.

 자본주의 사회에선 누구나 합법적인 방법으로 재산을 늘릴 수 있다. 그러나 동시에 한국 사회에는 특별한 유산이 없는 한 ‘상류층의 경제생활’을 포기해야 하는 직업이 있다. 부(富)보다는 다른 가치를 추구하는 것이다. 대표적인 게 직업 군인이다. 특별한 사정이 없는 한 군인의 길은 ‘중산층의 길’이다. 이상희·김태영·김관진 국방부 장관의 신고재산은 8억·7억·14억원이다.

 이명박 대통령은 통수권을 엄정하게 행사해 군의 기강을 세워야 한다. 김영삼 대통령은 F-15K도, K-9 자주포도 몰랐다. 하지만 군내 사조직 하나회를 척결함으로써 통수권을 확립했다. 최고지휘관의 위기는 대통령 통수권의 위기다. 대장(大將)들이 흔들리면 60만의 사기가 흔들린다.

김진 논설위원·정치전문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