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리 가’ 충격 … 이과반 학생들 “재수해야 하나” 한숨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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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1학년도 대입수능 성적이 발표된 8일 서울시 행당동 한양대학교 올림픽체육관에서 열린 대입 정시모집 설명회에 참석하려는 수험생과 학부모들이 줄지어 입장하고 있다. 17일부터 정시모집 원서 접수가 시작된다. [조용철 기자]


8일 오전 서울 종로구 풍문여고 고3 교실. 담임 이소희 교사가 수능 성적표를 나눠주자 여기저기서 “꺅~” 하는 비명 소리가 들렸다. “망했어” “지원 자격도 안 되겠어”라며 고개를 떨구는 모습이 보였다. 반면 “예상대로 나왔다”며 안도하는 학생들도 있었다. 장윤희(18)양은 “가채점 때보다 외국어는 2등급, 사회탐구는 1~2등급 더 올라 원하는 대학에 갈 수 있을 것 같다”며 웃었다.

 같은 시간 서울 강남구 경기고 3학년 교실 풍경도 비슷했다. 성적표를 받아든 이모(18)군은 “서울 상위권 대학을 목표로 했는데 언어와 외국어가 2등급이 나와 재수를 결심했다”고 말했다. 이과반에서는 “수리 가 때문에 시험을 망쳤다”는 학생들이 많았다. 한 학급 40명 중 절반 이상이 재수를 하겠다고 했다. 이 학교 교사는 “당장 성적이 안 나와 재수를 하겠다는 학생들이 많은데 이과반은 확실히 재수생이 늘어날 것 같다”고 예상했다.

  2011학년도 수능 성적표가 배부된 이날 전국 고3 교실에서는 수험생의 희비가 엇갈렸다. 수리 가 성적이 급락한 이과반 학생들은 대부분 울상을 지었다. 문과반 학생들도 초조한 모습이었지만 상대적으로 분위기는 나아 보였다. 17일 시작되는 정시모집 지원을 위해 진학상담실에는 성적표를 든 학생들이 줄을 이었다. 입시전쟁이 본격화된 것이다.

 같은 등급이라도 표준점수가 큰 폭으로 벌어지자 수능 최저학력기준을 맞춘 학생들은 수시에 기대를 걸거나 정시에서 하향 지원하겠다는 반응이 많았다. 자연계 학생인 김준섭(18·경기고)군은 “수리 가에서 1등급을 받았지만 표준점수가 낮다”며 “수시 때 지원한 의대에 붙지 못하면 정시에서는 공대를 지원하겠다”고 했다. 김신효(18·풍문여고)양은 “수리 나에서 1점 차로 2등급이 나왔다. 수시 결과를 기다리고 있는데 꼭 됐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올해 수능에서는 재수생이 강세를 보인 것으로 나타났다. 입시 전문가들은 “수리 가 등 시험이 어려워 상위권 재수생들의 점수가 높아졌다”고 분석했다. 재수 전문 K학원 관계자는 “상위권 학생들은 어렵지 않았다는 반응이 많았고, 실제로 표준점수가 대부분 올라갔다”고 전했다. 재수생 김모(19·여)양은 “지난해는 언어·수리·외국어 모두 5등급을 받았는데 올해는 모두 2등급을 받았다”며 “재수학원 같은 반 60명 중 30여 명이 수리에서 1~2등급을 받았다”고 말했다.

 ◆진학지도 어려움=중하위권에 학생들이 몰려 있는 데다 재수생의 강세로 고교 진학상담 교사들은 지도에 어려움을 호소했다. 청담고 남정욱 교사는 “재학생들은 상위권 성적도 잘 나오지 않았다”며 “치열한 눈치 작전이 시작될 것”이라고 예상했다. 풍문여고 손태진 진학상담 교사는 “영역별 가중치가 있는 수리 가의 파괴력이 커져 수리에 약한 여학생이 남학생보다 불리할 것으로 보인다”며 “내년에는 수리 나에 미·적분이 추가돼 문과 학생들은 가급적 재수를 피하려 하기 때문에 비인기학과 경쟁률이 높아지는 역전 현상도 나타날 수 있다”고 예상했다. 그는 “정시에서 가군은 소신, 나군은 안정, 다군은 예비로 지원하라고 지도했는데 올해는 마지막까지 접수 상황을 지켜봐야 할 것 같다”고 덧붙였다.

글=박유미·김민상 기자
사진=조용철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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