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서소문 포럼

전쟁 두려워 말라 vs 전쟁 일어난다

중앙일보

입력

업데이트

지면보기

종합 37면

정재숙
문화·스포츠 부문 선임기자

자가운전을 하는 친구가 탄식하듯 하던 얘기는 이런 것이었다. 노란색 미니버스와 승합차들은 다른 어떤 자동차보다 안전운전을 해야 마땅할 텐데, 실은 오히려 더 위험스럽게 운전하는 경우를 자주 본다는 것이다. 보호받아야 할 대상임을 알리려 노란 칠을 한 어린이 탑승 차량이 횡포 부리듯 신호를 무시하며 달린다면 정말 어이없는 일이다.

 물론 일반차량들이 이런 어린이 버스를 배려해 준 적이 있느냐고 되물을 수도 있다. 미국의 한 도시에서 찍은 동영상을 본 적이 있는데 한마디로 감동이었다. 노란색 스쿨버스가 정차하는 순간 바로 ‘STOP’이라고 쓰인 표지판이 운전석 쪽에서 튀어나오고, 그와 동시에 진행방향의 차도는 물론이고 반대편 모든 차로의 차량이 일제히 멈추는 장관이 연출되는 것이었다. 아이들은 흔히 방금 내린 버스의 앞을 가로질러 반대편 인도로 내달리기도 하니 차량들은 조심 또 조심하는 것이 당연하다. 보호하고 배려하려면 시늉만 내지 말고 이렇게 확실하게 해줘야 한다. 어떻든 안전과 평화를 상징하는 노란색 버스는 설혹 주변의 염려가 아쉽다 하더라도 스스로가 규칙을 준수하는 것이 당연한 일일 텐데, 위태롭게 주행하는 노란 버스라니 이건 정말 아이러니가 아닐 수 없다.

 복잡한 현대사회는 역설과 아이러니를 많이 내포한다. 평범한 명제들은 재미없으니 역설과 반어가 힘을 얻는다. 일상적으로 광범위하게 떠도는 역설적 명제들도 있다. 이를테면 건강과 관련된 것으로 “저혈압이 고혈압보다 오히려 더 위험하다”와 같은 말들이다. 상식의 뒤통수를 때린다는 점에서 격언처럼 들리는데, 알고 보니 실은 검증되지 않은 저급한 오해의 소산일 뿐이었다. “병원(病院)이 병을 만든다!” 이런 충격적인 역설은 병원에 들른 건강한 사람이 감염될 수도 있다는 점에서 아주 엉터리는 아니겠다.

 역설은 수사학과 문학의 영역이다. 짧은 한마디로 일상에 파묻힌 의식을 뒤흔드는 효과를 발휘한다. 다만 그런 역설이 사회와 정치의 영역에서 작동할 때에는 조금은 긴장할 필요가 있다.

 가장 냉정해야 할 국가적 수준의 상황판단과 대응조치의 과정에서 수사적 표현이 자주 등장하는 것은 썩 바람직하지 않다. 역설적인 표현들은 격언의 형태를 띠기 때문에 새삼스러운 질문은 기본적으로 봉쇄해 버리는 속성을 지닌다.

 요즘 우리가 자주 들은 말이 바로 ‘전쟁과 평화’의 역설이다. “평화를 원하거든 전쟁을 두려워하지 말아야 한다”는 훈계를 여러 곳에서 듣게 되었다.

 그러나 우리가 전쟁을 두려워하지 않고 우리의 적도 전쟁을 두려워하지 않는다면 실제로 전쟁이 일어날 가능성이 농후해질 뿐 평화는 위태로워질 것이다.

 전쟁을 원하는 사람은 없다. 모두 평화를 원한다. 하지만 평화를 위해 전쟁을 불사한다는 식이다. 그러니 이 명제는 아무래도 잘 이해되지 않는다.

 아마도 이 역설의 원형은 이런 것이었나 보다. “평화를 원하거든 전쟁에 대비하라.” 전쟁에 대한 경계 태세 없이 넋 놓고 있다가는 어느 순간 침략을 당할 수 있고, 그로 말미암아 평화는 깨지게 되니 이는 충분히 타당한 경고다.

 말이라는 것은 몇 단계를 거치다 보면 심각한 변형을 겪는 예가 많다. 전쟁에 대비하라는 타당한 명제가 “전쟁을 두려워하지 말아야 한다”를 거쳐서 “평화를 원하거든 전쟁을 벌여야 한다”로까지 나아간다면 위험천만한 말놀음이라 할 수 있다.

 아예 ‘전쟁은 곧 평화’라는 정신분열증적인 명제도 나타날 수 있다는 사실을 조지 오웰의 소설 『1984』는 이미 경고한 바 있다.

 최근 “햇볕정책은 북한에 돈을 주며 평화를 구걸했다”는 어떤 주장에 대해 실소할 수밖에 없었던 까닭은 그 내용보다는 표현 때문이었다. “돈을 주며 구걸했다”는 말은 아무래도 웃기지 않은가.

 국가적 목표는 합리적인 것이어야 하며 또한 헌법적 가치를 배반해서는 안 될 것이다. 평화통일은 우리 헌법에 명시된 민족의 목표이다. 또한 항구적 평화는 인류의 꿈이다.

 평화는 결코 구걸, 또는 멸시의 대상이 될 만한 것이 아니라는 말이다. 평화를 향한 우리의 한마음을 거듭 다져야 할 긴급한 시점이 오늘이다.

정재숙 문화·스포츠 부문 선임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