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양화가 김홍주씨 꽃그림전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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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랑가에서'꽃 그림'이라고 하면 통상'잘 팔리는 그림'이라는 뜻으로 통한다.적당히 화려하면서도 천박하지 않아 누구에게나 무난하게 팔 수 있는 작품이라는 얘기다.서양화가 김홍주(54) 씨는 꽃 그림을 그리는 작가다.그런데 그의 꽃 그림은 일반적 의미의 꽃 그림과는 많이 다르다.

우선 색을 한가지 내지 두가지 정도만 쓰기 때문에 그려놓고 보면 단조롭다 못해 촌스럽게 느껴지기도 한다.평균 1백호,즉 가로·세로 1m가 훨씬 넘는 크기 때문에 그림 속의 꽃은 친숙함보다는 압도적 느낌마저 준다.14일부터 국제화랑(02-735-8449) 에서 열번째 개인전을 갖는 그는 모두 16점의 대형 꽃 그림을 보여준다.

액자와 거울·창문 등 실제 오브제 속에 그림을 그려넣었던 70년대부터 80년대 풍경화,그리고 이번에 새롭게 시도한 꽃까지 그가 일관되게 신뢰하고 있는 것은 회화가 갖는'원초적 힘'이다.시각예술인 미술이 자신의 고유한 요소인 형상과 색으로 뿜어낼 수 있는 아우라(aura) 야말로 작가가 관객에게 전달할 수 있는 최선의 것이라는 얘기다.따라서 작품을 수단 삼아 작가의 미학적 이론 내지는 관념을 설명하려는 경향에는 반대하는 입장을 취한다.

"설명이 뒤따라야 완성되는 작품이 있습니다.그림 그 자체로 홀로 서지 못하는 것이지요.저는 그냥 그림은 그림으로서 스스로 말하게 하고 싶어요."그래서 무궁화를 그린다고 애국심을 뜻하는 것도 아니고 진달래를 그린다고 우리 민족의 감성을 상징하는 것도 아니다.다만 소재의 하나로 꽃을 선택했을 뿐이고,보는 사람의 생각이나 보는 당시의 환경에 따라 의미가 부여되는 것이다.가령 그림이 놓여지는 곳에 따라 그림의 의미가 달라질 수 있는 여지가 생기는 것이다.

작품 제목은 모두'무제'인 것도 눈여겨봐야 한다.개념미술이나 모더니즘 추상회화에 단골로 등장하는 제목이지만 그의'무제'는'제목없음',곧"선입견이나 편견없이 각자의 입장에서 그림을 받아들일 것"을 암시하고 있다.

이렇듯 그가 말하는'회화의 힘',나아가'회화의 본질'을 구현하는 데는 그 특유의 세필(細筆) 화 기법이 한몫을 한다.작업 광경을 목격한 누군가가"한땀 한땀 자수를 놓듯 작업한다"고 말했듯 눈썹 그리는 붓 수준의 아주 가느다란 붓을 사용하는 그는 보통 작품 한 점을 완성시키는데 족히 두달의 시간을 쏟는다.일례로 이번에 내놓은 나뭇잎 그림은 6년 전에 기초를 잡아놨다 전시를 계기로 완성을 보게 된 것이다.그는 현재 대전에서 살면서 목원대 교수로 재직하고 있다.11월 2일까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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