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일을 꿈꿀 여유 없는 사회, 미래 영화는 먼 일

중앙선데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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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5호 28면

공상과학(SF) 또는 미래 영화의 특징은 무한한 상상력이다. 그런 영화 가운데 상당수는 미래 첨단 과학기술에 대한 기대나, 지구멸망 등 디스토피아적인 인류의 미래를 담는다. 영화 속 미래 과학기술은 세월이 흐른 뒤 실제로 실현되기도 한다. 암울한 미래를 담은 영화는 환경오염이나 과학기술의 역작용 또는 오만한 인류에 대한 경고 메시지를 전한다. 이들 영화의 공통된 특징은 동시대 인간이 가지는 미래에 대한 다양한 이미지를 담고 있다는 것이다.

영화 속 미래 이야기 한국에 미래영화가 드문 이유

10월 28일부터 11월 7일까지 경기도 과천의 국립과천과학관에서 ‘2010과천국제SF영화제’(사진)라는 독특한 영화제가 열렸다. SF영화 제작의 물꼬를 트고, 과학과 예술의 창의적 만남을 보여주기 위해 기획한 영화제다. 올해 처음으로 열린 영화제에서는 일본 애니메이션 ‘스즈미야 하루히의 소실’을 시작으로, ‘2001 스페이스 오딧세이’ ‘철인 28 1/2호:망상의 거인’ ‘파프리카’ 등 11개국 37편의 명작 SF영화가 상영됐다. 영화와 관련된 각종 행사도 열렸다. 영화제에 아쉬운 점이 있었다. 소개된 영화 중 국내 영화는 단 한 편도 없다는 것이다.

우리나라에도 미래영화가 있긴 하다. ‘성냥팔이 소녀의 재림’과 ‘예스터데이’ ‘내츄럴 시티’ ‘원더풀 데이즈’…. 작품 대부분은 흥행에 실패해 제작비의 반도 회수하지 못했다. 그런 영화는 극장에서 간판을 내리는 순간부터 관객의 기억에서 서서히 사라져간다.

과천국제SF영상축제 태상준 프로그래머는 “몇 안 되는 한국 SF영화가 있긴 하지만 영화제에서 해외 유명 SF영화들과 같은 범주로 묶기가 어려웠다”고 말했다.

국내 영화인들은 ‘우리나라엔 제대로 SF나 미래를 다룬 영화가 거의 없다’고 말한다. 한국 사회에 이런 영화에 대한 수요가 없거나, 미래에 대한 불안이 없기 때문은 아닐 것이다. 휘발유 값이 L당 2000원을 육박하고, 온난화 속도가 세계 평균의 두 배에 달하는 게 이 땅이다. 북에서 수시로 ‘서울 불다바’를 외치고, 서해에선 무력충돌이 일어나는 나라다. 한국만큼 미래에 대한 불안에 시달리는 나라도 드물다. 미래 영화에 대한 수요도 있다. 2012아바타인셉션매트릭스마이너리티 리포트 등과 같은 블록버스터급 할리우드 SF영화는 흥행에 성공했다.

왜 국내 영화인들은 미래영화 만들기를 꺼릴까. 일단 현실적 이유다. SF영화는 제작비가 많이 든다. 이상용 부산국제영화제 프로그래머는 “SF영화는 돈이 많이 드는 데다 그간 성공한 사례도 없었다”며 “제작자 입장에서는 실패 위험이 큰 주제보다는 안정적인 쪽으로 영화를 선택할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보다 근본적인 문제점을 지적하는 사람도 있다. 한국 사회가 그간 미래를 꿈꿀 여유가 없었기 때문이라는 설명이다. 과천국제SF영상축제 민병천 위원장은 “우리 사회가 과거나 현재의 사실에만 매달리다 보니 SF·미래영화를 낳을 수 있는 문화적 토대가 부족했다”고 말했다. 우리 사회가 최근 미래학을 찾는 이유도 바로 그것이 아닐까. 미래가 점점 더 불안해지니 미아리 점집을 찾듯, 자·타칭 미래학자의 입을 통해 10년 뒤, 20년 뒤 미래 모습을 보려는 것이 아닐까. 미래를 꿈꾸지 않고 기성품 미래를 소비하려 든다면, 그런 미래는 로또와 다를 바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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