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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tyle&] 동대문서 건졌다, 참신한 구제옷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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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 22면

“엄마 옷장에서 찾았어요.” 패셔니스타들이 하는 말이 올겨울엔 더 솔깃하다. 꽈배기 니트, 꽃무늬 원피스, 무통 재킷 등 복고풍 옷들이 유행하기 때문. 하지만 마땅한 ‘엄마 옷장’이 없는 이들은 어쩌랴. 대안은 구제를 ‘사서’ 입는 거다. 명동·압구정 등 쇼핑거리에도 구제숍이 있지만 메카는 서울 동대문 광장시장의 ‘수입구제상가’다. 일본·캐나다·이탈리아 등에서 들여온 구제옷들을 파는 가게가 300여 개나 모여 있다. 값도 동대문 보세옷의 반값 수준. 단 제아무리 쇼핑 고수라 해도 구제 쇼핑은 노하우가 필요하다. 남이 입은 옛날 옷인 만큼 보는 안목이 남달라야 하기 때문이다. 구제 매니어인 스타일리스트 서수경씨와 그래픽 디자이너 박지원씨가 상가를 직접 돌며 비법을 알려줬다. 보물이라도 찾은 듯 환호했던 ‘득템’도 함께 소개한다.

글=이도은 기자 , 사진=권혁재 전문기자

찍어놓고 떠날 땐 옷걸이에 숨겨라

1 올겨울 유행과 어울리는 복고풍 퍼 재킷. ‘서울패션위크’의 전신인 ‘서울컬렉션’이라고 붙은 라벨에서 디자이너 옷임을 알 수 있다. 3만5000원. 2 앞 코에 고무를 덧댄 빈티지 워커. 8만원. 3 옛날 옷 같지 않게 칼라와 품이 좁은 체크셔츠. 7000원. 4 유행하는 노르딕 패턴이 어깨 쪽에만 살짝 들어간 니트. 1만5000원. 5 흔히 볼 수 없는 회색 가죽 재킷. 2만8000원.

“처음 오면 그냥 ‘구제는 이런 거구나’ 하고 한 바퀴 쭉 보세요.” 서씨의 조언이다. 옛날 옷 자체가 낯선 데다 옷을 빼곡히 걸어놔 쇼핑부터 하는 건 무리라는 얘기다. 특히 3층은 말 그대로 옷이 산더미처럼 쌓여 있어 초보자라면 아예 2층만 보는 게 낫다는 것. 시간대는 도매상이 빠지는 오전 11시~오후 3시가 한산하다. 구제 쇼핑은 여느 쇼핑과 다른 점이 있다. 중간에라도 ‘이거다’ 싶은 생각이 80%쯤 드는 물건은 사버리라는 것. 구제는 똑같은 게 없기 때문. 서씨는 두 번째 들른 가게에서 케이프 코트를 15만원에 질렀다. 니트·스커트가 1만~2만원, 코트·점퍼도 3만~8만원 안팎인 가격대를 생각하면 고가였지만 망설임이 없었다. 서씨는 “어느 한정판보다도 귀한 게 구제의 매력”이라면서 “망설여지는 물건은 ‘잠깐 팔지 말라’고 부탁하거나 옷걸이 중간에 슬쩍 숨기라”고 말했다.

컬러·무늬가 강한 옷은 피하라

‘너무 복고풍인 옷은 피하라’. 서씨와 박씨가 말하는 제1 원칙이다. 특히 꽃무늬 자수나 큰 체크, 빨강·초록 등 원색의 옷, 패턴이 복잡하거나 형광색이 들어간 옷은 일단 제외한다. 상가에선 분위기 자체가 예스러워 예뻐보이지만 집에 오자마자 후회하기 십상이라는 것. 서씨는 “색깔은 톤다운된 갈색·검정 위주로 고르고 무늬는 자잘한 것으로 골라야 오래 입을 수 있다”고 말한다. 가령 노르딕 패턴이 유행이라고 가슴 한복판에 빨간 사슴무늬가 있는 옷을 고르는 것은 NG. 소매쪽에 작은 눈꽃 모양이 들어간 디자인 정도로 분위기를 낸 옷이 훨씬 수명이 길다. 평소 마르니나 드리스반노튼처럼 빈티지풍 명품 브랜드의 느낌을 알고 있으면 유리하다. 박씨는 “구제옷을 고를 땐 소매통과 칼라 폭부터 확인하라”고 일러줬다. 옛날 옷은 길이는 짧고 소매통이 늘어지는 데다 칼라도 넓고 길게 빠지는 게 많다. 컬러나 무늬보다 라인 자체를 봐야 한다.

반드시 입어보고 사라

6 복고풍 굵은 짜임이 도드라지는 꽈배기 니트 카디건. 털모자에 안감이 기모 처리돼 따뜻하다. 2만원. 7 워커 부츠와 짝지으면 어울리는 꽃무늬 시폰 원피스. 2만원. 8 미니멀한 ‘셀린느’와 느낌이 비슷한 가죽스커트. 1만5000원. 9 명품 브랜드 ‘까스텔 바작’의 캐시미어 소재 케이프 코트. 15만원. 10 아이보리 가죽 스니커즈. 바닥 안에 쿠션까지 들어가 있다. 2만3000원.

구제옷은 입어보고 사야 한다. 태그에 달린 사이즈도 의미가 없다. 목이나 소매끝처럼 살갗이 직접 닿는 곳의 느낌도 확인해 봐야 후회가 없다. 이 때문에 레깅스에 얇은 긴 니트를 걸친 ‘쇼핑 복장’으로 가는 게 좋다. 탈의실이 없어도 쉽게 입어볼 수 있는 차림이다. 자신이 가장 좋아하는 바지를 샘플로 가지고 가 일일이 품을 재봐야 실패가 없다는 게 박씨가 일러준 요령이다. 사이즈만 문제가 아니다. 입어봐야 옷 상태를 파악할 수 있다. 박씨는 맘에 드는 가죽점퍼를 걸친 뒤 모든 지퍼를 하나하나 올려보고, 주머니에 손을 찔러넣기도 했다. 팔도 휘둘러봤다. “구제에선 지퍼가 고장나거나 단추가 없는 옷도 많거든요. 그건 입어보지 않고 눈으로 알아채긴 힘들어요. 몸을 움직이면서 박음질이 괜찮은지도 볼 수 있죠.”

아는 만큼 건진다

구제 쇼핑에선 명품 카피가 아닌 명품 스타일의 물건을 고르는 게 정석이다. 예전엔 진짜 명품 빈티지가 많았지만 요즘은 짝퉁이 더 많다. 서씨는 스타일리스트답게 쇼핑 내내 각 명품 브랜드와 비슷한 물건들을 척척 골라냈다. 앞코에 리본이 달린 스웨이드 하이힐을 발견하곤 ‘이건 완전 루이뷔통’이라며 흥분했고, 크림색 일자 가죽 스커트를 보면서 ‘셀린느’를 외쳐댔다. 평소 백화점을 돌아다니거나 컬렉션을 보며 ‘예습’하는 게 안목을 기르는 비결이라고 그는 귀띔했다. 박씨도 국내 미유통 해외 브랜드를 꿰고 있었다. 해외 벼룩시장을 다니면서 키운 내공이다. 워커 부츠를 고를 땐 상표가 찍힌 신발 밑창부터 확인했다. 8만원짜리 부츠를 고른 뒤 미소가 번졌다. “새것을 사자면 40만~50만원은 줘야 하거든요. 완전 대박이에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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