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week& 연예] "내 말이 아직도 안 웃겨? 이거 웬 시추에이션" 박희진

중앙일보

입력

업데이트

지면보기

16면

매니어 팬을 거느린 시트콤 '안녕, 프란체스카'(MBC) 인기의 일등공신은 '안성댁'박희진(32)이다. 꽃미남 흡혈귀 켠을 좋아하는 40대 집주인 역할. "튀뷔에 좌에 좡고꽈지. 이거 웬 당황스러운 시추에이션?" 그의 독특한 목소리 연기에 시청자들이 넘어간다. 아직도 이름 석자보다 '안성댁'을 기억하는 사람들이 많지만, 그는 이미 데뷔 7년차다. 1999년 MBC 개그맨 공채를 통해 방송계에 발을 내디뎠다. MBC 라디오 '별이 빛나는 밤에'의 DJ를 맡아 '별밤지기'노릇도 1년이나 했고, 교통방송 '라디오 9595쇼'는 4년째 진행 중이다. 또 MBC 라디오 '윤종신의 2시의 데이트'에서는 매주 화요일 '생방송 드라마'코너를 맡고 있다.

"진짜 재미있게 일하고 있어요. 내 연기에 웃어 주시니 기분 좋죠."

그는 타고난 엔터테이너다.

"중.고등학교 다닐 때도 학교에서 돌아오면 내일은 또 어떤 코미디로 애들을 웃겨줄까 늘 고민이었죠." 목소리 연기는 그때부터 그의 장기였다. 외화 비디오를 보면서 자막을 대본 삼아 목소리 연기하는 게 취미였고, 선생님 목소리의 특징을 잡아 만든 성대모사에 친구들은 포복절도했다. 학교 행사도 그의 독무대. 학교 안에 그의 팬클럽이 조직됐을 정도였다.

하지만 그는 한참을 '엄숙한' 아티스트로 살았다. 대학에서 피아노를 전공하고 호암아트홀.인켈아트홀 등에서 독주회도 열었던 피아니스트가 그의 본업이었다. 그래도 그의 끼는 숨이 죽지 않았다. 대학 졸업후 시작한 피아노 교사 생활이 3년을 넘어서자 더이상 참을 수가 없었다. 1997년 서울예대 영화과에 들어갔다.

"부모님이 많이 반대하셨죠. 밥상머리에서 숟가락.젓가락이 날아다녔을 정도였으니까요."

처음엔 영화 쪽으로 눈을 돌렸다. 오디션이란 오디션에 모두 응시해 40여 편의 영화에 단역으로 나왔다. "영화 '약속'에서 맡았던 김 간호사 역이 가장 큰 역이었어요. 주인공 박신양씨한테 주사를 놓고 '죄송합니다, 죄송합니다'라고 말하는 게 다였죠. 얼굴이 그렇게 예쁘지도, 키가 크지도 않은 제가 할 수 있는 코믹 조연 역이 그때는 지금처럼 많지 않았거든요."

결국 다시 피아노 교사 생활로 돌아왔다. 하지만 기회는 우연히 찾아왔다. TV 화면에 자막으로 흐르던 'MBC 신인 개그맨 선발 대회'란 글자에 그는 무릎을 쳤다. 김대중 전 대통령 목소리를 흉내내는 '여자DJ'연기로 400대 1의 경쟁을 뚫고 합격했다. "2001년에 청와대에서 특집방송을 하기도 했어요. 김 전 대통령 앞에서 'DJ'연기를 하니까 김 전 대통령이 '내 흉내내 먹고 산다니 다행'이라고 하시더라고요."

폭발적인 인기를 끌지는 못했지만 그의 활동은 꾸준했다. MBC '코미디하우스''웃는 날 좋은 날' '유쾌한 일요일''똑바로 살아라' 등에 출연해왔고, 2000년 MBC 코미디대상 신인상, 2003년 교통방송 MC부문 우수상 등 수상경력도 화려하다.

"'두근두근 체인지'때 알게 된 노도철 PD가 지난해 가을'안녕, 프란체스카' 시놉시스를 보여주며 '안성댁'캐릭터를 만들어보라고 하셨어요. 그동안 라디오 진행하면서 써먹었던 목소리 캐릭터에다 성우 장유진 선생님의 약간 비음 섞인 목소리를 섞어 '안성댁'을 만들었죠."

그는 아직도 욕심이 많다. 피아노 실력을 밑천 삼아 '음악 토크쇼'를 진행해 보고도 싶고, 뮤지컬이나 영화에도 출연하고 싶다. 팬들을 위한 무대도 그의 꿈 중 하나다. "그동안은 팬카페 회원들과 가끔 음식점 같은 데서 오프라인 모임을 했거든요. 이제는 조그만 소극장을 하나 빌려 제 성장과정을 담은 모노드라마를 보여드리면서 공연을 하고 싶네요."

그의 팬 카페 회원은 현재 5000여 명. '조그만 소극장'은 아무래도 좁을 듯하다.

글=이지영 기자<jylee@joongang.co.kr>
사진=김태성 기자 <tskim@joongang.co.kr>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