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은 주민 구호품 제대로 전달 안 돼 … “먹을 것 달라” 호소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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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해구호협회 회원들이 28일 연평도 연평초등학교 운동장에 주민들이 돌아오면 임시로 거처할 가건물을 짓고 있다. 두세 명 정도가 거주할 수 있는 조립식 건물이다. [김태성 기자]


“면사무소 직원을 위해 주민이 남아 있는 겁니까!”

 28일 오전 10시쯤 연평면사무소에서 소동이 벌어졌다. 구호품을 받지 못한 주민 김정희(46)씨가 항의하러 온 것이다. 김씨는 “나는 젊으니까 그렇다 쳐도 노인들은 큰집(면사무소)에서 봐줘야 할 것 아니냐”고 목소리를 높였다. 직원 서너 명이 김씨를 면사무소 밖으로 데리고 나갔다. 직원들이 “누구 허락받고 찍는 거야”라고 고함치며 취재진의 카메라를 거칠게 밀쳤다.

 북한의 연평도 공격 이후 위기 관리 시스템이 제대로 작동되지 않고 있다. 인천시와 옹진군이 연일 주민 지원대책을 쏟아내지만 주민들의 피부에는 와 닿지 않는다. 잔류 주민들은 정부와 인천시 등 공무원의 지원을 기다리기보다 주민 스스로가 서로를 도우며 생존하고 있다.

 27일 오후 8시쯤. 해병대 연평부대 부사관 2명이 마을 곳곳을 돌며 불이 켜진 집에 들어가 남은 주민 수를 파악했다. 이들은 주민과 취재진, 자원봉사자, 복구 인력 등으로 나눠 인원을 확인했다. A부사관은 “면사무소에서 (인원 파악을) 안 하니 우리가 하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면사무소는 대부분의 주민이 빠져나간 25일부터 인원 파악에 나섰다고 했지만 군과의 협력은 되지 않고 있다.

 연평면사무소는 27일 오전 “잔류 주민이 28명으로 대연평도에 18명, 소연평도에 10명이 있다”고 밝혔다. 오전과 오후 공무원들이 직접 집을 방문해 확인한 결과라고 했다. 그러나 주민들은 “대연평도에 20명이 넘게 있다”며 면사무소의 집계를 반박했다. 본지 확인 결과 잔류 주민 중 3가구는 27일까지 공무원이 방문하지 않았다. 연평면사무소는 28일 오후 잔류 인원을 31명으로 정정했다. 이날 낮 12시10분 여객선 편으로 섬에 들어온 승객은 118명, 나간 승객은 128명이다.

 한·미 합동훈련을 하루 앞둔 27일 오전까지 대피소는 포격 당시 그대로였다. 북한이 “합동훈련이 시작되면 곧바로 대응하겠다”고 발표해 언제라도 주민들이 대피소로 피해야 할 상황이지만 관계기관은 움직이지 않았다. 잔류 주민 중 최고령인 이유성(83) 할아버지가 보다 못해 면사무소를 찾아가 항의했다. 그제야 면사무소 직원들은 19개 대피소에 생수와 라면·담요 등 구호물품과 손전등을 비치했다. 이기옥(50·여)씨는 “구호품도 아버지가 항의하니 가져다 줬다”고 말했다. 할머니를 인천으로 보내고 혼자 남은 신유택(71) 할아버지는 스스로 끼니를 해결하고 있다. 27일 오후 9시 신 할아버지는 취재진에게 “그동안 라면만 먹고 살았다”고 말했다. 취재진이 건넨 빵·우유, 전투식량이 처음 받은 ‘구호품’이었다. 그러나 연평면사무소 상황실장을 맡고 있는 최철영(47) 산업팀장은 “다들 집에 쌀과 식량이 충분해 굶어 죽는 사람 없다”고 말했다.

 공사 등을 위해 섬에 남아 있는 외지인에게는 구호품도 제대로 전달되지 않고 있다. 군부대 막사 전기공사를 하기 위해 섬에 들어온 소병연(45)씨는 “면사무소에 가서 구호품이나 라면이라도 달라고 했는데 주민이 아니어서 안 된다고 거절당했다”고 말했다. 소씨 일행은 적십자사가 주는 배식으로 끼니를 때웠다. 소씨 일행 3명은 “불안하기도 하고 배식만으로 생활하기가 어렵다”며 28일 인천행 여객선을 타고 섬을 나갔다.

 배식도 전쟁이다. 대한적십자사는 육지에서 가져온 급식차를 이용해 주민과 취재진, 복구 인력 등에게 하루 세 번 초등학교 운동장에서 배식한다. 끼니 때마다 150명 정도가 줄을 선다. 손일수 적십자사 재난구호팀장은 “부식이 제때 수송되지 않아 식단은 단출하고 배를 채우는 정도”라고 말했다.

 옹진군은 북한의 포격 다음 날인 24일 최현모 부군수를 실장으로 비상상황실을 설치, 운영 중이다. 비상상황실은 ▶상황 ▶치안 및 구조구급 ▶현장관리반 등 3개 반으로 운영 중이다. 옹진군은 “연평면사무소와 긴밀한 협력체계를 구축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그러나 연평도 잔류 주민들이 면사무소로 몰려가 항의하는 등 현지 분위기는 전혀 파악하지 못하고 있다.

상황실 운영반장인 김득년 지역경제과장은 “항의할 주민이 누가 있느냐. 면사무소 직원들이 잘 대처하고 있기 때문에 문제 없을 것이다. 기자들이 만들어낸 얘기”라고 반박했다. 조인수 기획관리실장도 “상황을 유지하고 집집마다 방문해 주민 애로사항을 청취하도록 지시했다”며 “주민이 몇 명이나 남았다고 항의하느냐”고 반문했다.

 옹진군은 행정안전부로부터 특별교부금 10억원을 받았다. 여기에 군청이 확보하고 있는 예비비 15억원도 연평도에 집중 투입하기로 했다. 그러나 지금까지 실질적으로 집행된 지원금은 거의 없다.

연평도 포격 같은 사건이 전무후무한 일이다 보니 군청이 관련 업무에 대한 노하우가 없어 교부금 집행계획을 세우는 데 시간이 걸리고 있다. 옹진군은 29일부터 주민들에게 1인당 100만원(초등생 이하 50만원)의 지원금을 지급할 예정이다.

최성일(48) 주민비상대책위원장은 “아무런 준비 없이 섬을 나온 주민들에게 신속한 지원이 이뤄지지 않아 답답하다”고 말했다.

연평도=신진호·유길용 기자
사진=김태성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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