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례도 못 치르는 민간인 희생자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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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9면

“(영전에) 꽃 바치고 할 것도 없습니다. 그냥 나가세요.”

 28일 오전 11시30분쯤 북한군의 포격으로 희생된 김치백(61)·배복철(60)씨의 합동 분향소가 설치된 인천 길병원 장례식장. 빈소로 들어가려는 한나라당 안상수 대표와 원유철 국회 국방위원장 앞을 김씨의 아들 영모(31)씨 등 유가족들이 거칠게 가로막았다. 이들은 “조화 보내고 문상만 왔다 가면 정부의 역할이 끝나는 것이냐. 대책을 마련해 줘야 장례를 치를 것 아니냐”며 울분을 토했다.

 민간인이 희생된 지 5일이 지났지만 장례 일정이 정해지지 않고 있다. 유가족들이 “고인들을 의사자로 예우해 달라”는 요구에 정부가 뚜렷한 답변을 내놓지 않고 있기 때문이다.

 배씨의 매형인 전상철(69)씨는 “같은 사건으로 숨진 군인들은 전사자 예우로 해병대장(海兵隊葬)을 치렀는데 민간인들은 장례를 치르지도 못하고 있다”며 “고인들이 억울하게 희생된 만큼 의사자로 지정해주는 것이 적절한 예우라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희생자의 장례를 주관하는 인천시는 난처한 입장이다. 의사자 예우 문제는 지방자치단체의 소관이 아니라 유족 개인이 보건복지부에 신청을 하면 의사상자 심사위원회를 거쳐야 결정되기 때문이다. 4월 천안함 수색작업에 참여했다 배가 침몰하면서 실종된 금양98호 유가족들도 정부에 ‘의사자 지정’을 요구했지만 거부당했다.

 유가족들은 “인천시와는 장례 문제를 더 이상 협의할 수 없다”며 “보건복지부나 국방부 관계자가 우리와 직접 협의하라”고 요구했다.

 이에 대해 의사자 지정 주무부처인 보건복지부의 진수희 장관은 이날 유족을 조문한 자리에서 “확답을 할 수는 없지만 유족의 뜻을 반영하도록 최선을 다하겠다”고 말했다.

 한편 김씨의 조카 손녀 조아라(12·서울)양은 이날 이명박 대통령에게 “유가족의 마음과 입장을 생각해 기약조차 없는 장례식이 치러질 수 있게 도와달라”는 내용의 편지를 썼다. 조양은 이 편지를 청와대 인터넷 홈페이지에 곧 게재할 예정이다.

 인천=최모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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