Q G장조? C장조?

중앙선데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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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4호 05면

# 장면 1 “오늘 연주곡이 뭐죠?” “모차르트 피아노 협주곡 17번요.” “아, G장조! 정말 아름답죠.”
# 장면 2 “방금 앙코르 곡이 뭐였죠?” “글쎄, 피아니스트가 ‘모차르트 C장조 소나타’라고 한 건 들었는데요.” “그럼, 작품 번호로 몇 번이죠?”
연주자들과 대화를 나누다 보면 작품 번호 대신 조성(調性)을 얘기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그럼, 우리는 생각합니다. ‘아니, C장조 소나타가 딱 한 곡도 아니고 작품 번호로 말해 주면 더 분명할 텐데’.

김호정 기자의 클래식 상담실

C장조는 피아노 건반의 ‘도’ 음을 중심으로 하는 음계를 이르는 말입니다. 쉽게 말해 ‘레’를 기본으로 하는 음계와는 다르겠죠. 예를 들어 슈베르트의 연가곡집 ‘겨울나그네’를 볼까요. 남성 성악가의 주식(主食) 같은 음악입니다. 이 곡을 테너ㆍ바리톤ㆍ베이스 순서대로 비교해 들어보세요. 페터 슈라이어, 디트리히 피셔 디스카우, 연광철을 각각 추천합니다. 첫 음이 한 건반씩 내려오는 것을 들을 수 있을 겁니다. 조성이 바뀌는 거죠. 슈베르트가 쓴 원래 조성은 테너, 즉 슈라이어가 부르는 d단조입니다. 성악가들은 자신의 음역에 맞게 조를 바꿔, 즉 전조(轉調)해 부릅니다. 재미있는 것은 곡조에 따라 음악 느낌이 달라진다는 겁니다.

그래서 조성은 음악의 ‘목소리’이자 ‘혈통’입니다. 작품 번호는 태어난 뒤 붙은 ‘이름’이고 조성은 타고난 ‘혈액형’인 거죠. 그래서 음악가들은 조성에 특별한 의미를 부여합니다. 베토벤은 교향곡 3번 ‘영웅’과 피아노 협주곡 5번 ‘황제’를 같은 조로 썼습니다. 우연일까요? 아닙니다. 두 작품의 조성인 E♭장조는 열려 있고 진취적인 인상을 줍니다. 만약 이 교향곡 첫 화음을 전조해 들어보면 영웅 대신 싸움터나 기상나팔 느낌이 날지도 모릅니다. 물론 ‘황제’라는 제목은 베토벤이 아니라 출판사가 붙였지만 두 곡을 연달아 들어보면 E♭장조의 고유한 느낌이 뭔지 확실히 알게 될 겁니다.

베토벤의 ‘운명’ 교향곡은 어떨까요? c단조입니다. 베토벤이 선호한 조성이고, 음악적으로는 E♭장조와 짝꿍입니다. ‘영웅’ 교향곡의 2악장이 바로 c단조로 쓰였죠. 하이든ㆍ모차르트 등 베토벤의 선배들만 해도 c단조 음악을 별로 안 썼습니다.

하지만 베토벤은 ‘운명’을 비롯해 마지막 피아노 소나타, ‘비창’ 소나타 등 중요한 작품에 이 조성을 많이 썼습니다. c단조는 조금 비틀어진 우상의 모습, 드라마틱한 예술가의 삶을 느끼게 합니다. 피아니스트 김선욱이 최근 전국 6개 도시에서 독주회를 열고 있죠. 그는 E장조의 베토벤 30번 소나타와 c#단조의 ‘월광’ 소나타를 이어지도록 배치했습니다. 같은 바탕에서 태어난 형제를 보여 주려는 듯합니다.

이처럼 조성은 중요한 열쇠를 쥐고 있습니다. 모차르트는 연주 여행 차 파리에 머물 때 어머니의 부음을 듣습니다. 그전까지는 밝고 열린 느낌의 장조로 피아노 소나타를 썼지만, 이때만큼은 a단조를 사용합니다. 마음 한쪽이 펴지지 않는 듯한 이 어두움은 모차르트 단조만의 매력입니다. 조성이 하는 말에 귀 기울일 때 보이는 아름다움입니다.

A 음악의 성격 나타내는 ‘혈액형’이죠

※클래식 음악에 대한 궁금증을 김호정 기자의 e-메일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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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호정씨는 중앙일보 클래식ㆍ국악 담당 기자다. 서울대 기악과(피아노 전공)를 졸업하고 입사, 서울시청ㆍ경찰서 출입기자를 거쳐 문화부에서 음악을 맡았다. 읽으면 듣고 싶어지는 글을 쓰는 것이 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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