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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대인 아버지의 2차원 영재교육 - 토론법- IQ 계발방법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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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모 대학에서 교수들에게 특강을 할 때다. 미국 한인 1.5세 출신 변호사인 모 교수가 질문을 했다. “제가 하버드 법학대학원에서 공부할 때 학생의 절반이 유대인이었습니다. 그들이 강의시간에 교수에게 질문을 하도 많이 해 수업진도를 나가기가 어려울 정도였습니다. 유대인들이 질문을 많이 하는 이유가 무엇입니까?” 바로 탈무드식 질문교육에 길들여졌기 때문이다.

 탈무드는 현자들의 질문과 답변으로 구성돼 있다. 이는 관습적으로 내려와 유대인은 습관적으로 질문을 한다. 유대인 아버지가 안식일 식탁에서 자녀를 가르치는 모습에서 이를 알 수 있다. 랍비 코헨씨 가정에서 본 장면을 소개한다. 아버지가 네 살 된 아들에게 질문한다.

 “지난주에 무엇을 배웠지?”(유대인은 매일·매주 읽어야 할 성경 분량이 있다)“삼손” “삼손이 누구지?” “이스라엘의 판관” “왜 힘이 셌지?” “머리가 길어서” “왜 힘이 없어졌지?” “이방인 여자 드릴라가 머리를 깎아서” “너는 어떻게 살아야 되지” “이방인을 조심해야죠”

 아버지는 일곱 살 된 큰딸을 불렀다. 아버지와 딸의 학습도 처음부터 끝까지 질문과 답변으로 이뤄졌다. 좋은 질문은 좋은 답을 이끌어낸다. 이런 귀납적 교육방법이 유대인을 특별하게 길러낸다. 유대인 부모는 답을 빨리 주지 않는다. 왜 이 답이 맞고 틀린가를 논리적으로 질문하고 토론하는 과정에서 자녀 스스로 답을 찾게 해 분석력·분별력·상상력을 길러준다.

 그런데 한국 가정에선 아버지가 시간이 많이 걸린다며 자녀들을 한자리에 모은 뒤 삼손의 이야기를 처음부터 끝까지 일방적으로 설명한다. 학교 수업도 마찬가지다. 이 같은 연역적 교육은 아이들에게 생각할 기회를 주지 않는다. 생각하지 않으니 배운 내용이 무엇인지 이해하지 못하고 쉽게 잊어버린다. 이 것이 한국이 교육에 수많은 시간과 노력을 투자하고도 노벨상을 받는 인재를 길러내지 못하는 이유다.

 미국 명문대에 진학한 한인 학생 10명 중 4명 이상이 학업을 중도 포기한다는 뉴스<중앙일보 2008년 10월 3일자>를 봤다. 그 이유는 학원에 길들여졌기 때문이라고 생각한다. 답을 받아쓰는 습관에 젖으면 스스로 답을 찾지 못한다. 답을 가르쳐 주는 선생이 없으니 길을 잃는다. 학문의 정글에서 스스로 헤쳐나가는데 필요한 논리·토론·글쓰기 능력에 한계가 있기 때문이다.

 유대인 아버지는 자녀에게 성경뿐만 아니라 학문을 가르칠 때도 질문으로 시작해 질문으로 끝낸다. “다섯 더하기 다섯은 얼마니” “열둘이오.” 이 때 한국 아버지라면 “도대체 넌 엄마 머리를 닮았니. 이렇게 쉬운 것도 모르냐”며 혼을 내거나 핀잔을 줄 것이다. 하지만 유대인 아버지는 웃으며 다시 질문한다. “응, 그래 그러면 다섯 더하기 일곱은 얼마지” 아들은 그제야 자기가 틀렸다는 것을 깨닫는다. “아, 알았어요. 다섯 더하기 일곱은 열둘이고, 다섯 더하기 다섯은 열이에요.” 아버지는 웃으며 칭찬한다. “그렇지. 내 아들 똑똑하네.”

 유대인은 이렇게 답부터 가르쳐주는 것이 아니라 계속된 질문을 던져 자녀 스스로 답을 찾도록 도와준다. 틀렸다고 해도 윽박지르지 않고 더 잘하도록 격려한다. 유대인은 매사에 호기심이 많고 배우기를 열망한다. 이는 부지런하고 똑똑한 영재들에게 많이 관찰되는 특징이기도 하다. 유대인의 질문식 교육법은 수천 년 동안 자녀를 영재로 키운 원동력이었다. 한국에선 교사의 말을 잘 듣는 학생이 우수한 학생이지만 유대인에겐 좋은 질문을 많이 하는 학생이 우수한 학생이다.

<현용수 쉐마교육연구원장재미 교육학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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