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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이철호의 시시각각

‘때린 놈과 맞은 놈’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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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4면

이철호
논설위원

25년 전 마지막 군 생활을 강원도 화천군 다목리의 포병대대에서 보냈다. 대성산 아래의 2군단 예하 최전방 155㎜ 곡사포 부대였다. 매일 ‘너 죽고 나 죽는’ 식의 대포병(對砲兵) 사격 훈련을 했다. 방열(탄착지점을 계산해 포신 각도를 맞추는 것)-진지이동(포를 견인해 옮기는 것)-방열의 연속이었다. 육군 교본에 따라 3~4발을 쏜 뒤 3분 이내에 위치를 이탈해야 했다. 아니면 북한이 흙이 파인 방향과 깊이를 보고 곧바로 우리를 향해 포탄을 날리기 때문이다.

 낡은 포병 경험에 비춰봐도 연평도 사태는 상상을 초월한다. 가장 놀란 것은 오히려 북한이 아닐까 싶다. 정밀 조준 포격의 결과는 정말 경악스러울 정도다. 북한 포병의 형편없는 포격 실력이 그대로 드러났다. 그나마 가슴 아픈 희생자가 4명에 그친 것도 이 때문이다. 155㎜ 포탄의 유효살상 반경은 50m. 연평도의 면적은 7㎢. 만일 군 부대와 민가로 표적을 한정한다면 100발 이내로 전멸(全滅)시킬 수 있다. 국방부에 따르면 북한이 쏜 170여 발 가운데 무려 90여 발이 바다에 빠졌다. 집중포격 대상이던 K9 자주포 4문이 멀쩡하게 대응사격에 나섰다. 포탄은 애꿎은 호프집과 중국집을 덮쳐 민간인 2명의 목숨까지 앗아갔다. 우리라면 당연히 영창감이다.

 해병대의 1차 반격까지 13분간의 공백을 걸고 넘어지는 것은 이해하기 어렵다. 아무리 명품 K9 자주포라 해도 적의 포탄이 떨어지면 진지이동이 최우선이다. 여기에다 포까지 뛰어가 신관연결-장약장전-좌표 입력-발사대기까지 10분은 훌쩍 넘긴다. 빠른 대응은 최정예 해병 포대여서 가능했다. 훈장(勳章)을 줄 일이다. 오히려 2차 반격 때의 14분 공백이 문제다. 대포병 레이더가 가동되고 있었고, 노출된 북 해안포가 강화진지로 들어가기 전에 타격하는 게 아쉬웠다. 대응포격이 80발에 멈춘 것도 쉽게 이해되지 않는다. K9 자주포는 한 문당 보통 48개의 포탄을 싣고 다닌다.

 이 대목에서 마음에 걸리는 게 “확전하지 말고 잘 관리하라”는 청와대의 첫 반응이다. 소극적인 대응포격의 배경일지 모르기 때문이다. 당시 교전지역 상공에는 미사일을 장착한 우리 전투기들이 떠 있었다. 미사일로 북 해안포를 때리면 ‘포병 대(對) 포병’이라는 교전규칙이 깨지게 된다. 전면전까지 각오해야 할 상황이다. 군 통수권자인 대통령으로선 당연히 ‘확전(擴戰) 금지’ 명령을 내릴 권한이 있다. 하지만 청와대의 해명대로 이런 발언이 없었다 해도, 이런 1급 보안명령이 외부로 흘러나온 것은 또 다른 차원의 문제다. 국민의 눈에는 지나치게 수동적이고 방어적으로 비치게 된다. ‘병역면제-겁쟁이 정권’이란 비난을 자초한 셈이다. 우리 사회가 어제 한나라당 홍사덕 의원의 “청와대와 정부의 X자식들 청소하라”는 발언에 공감하는 분위기다.

 앞으로 남북한 모두 연평도 사태의 후폭풍(後爆風)에 시달릴 게 분명하다. ‘맞은 놈은 발 뻗고 자도, 때린 놈은 웅크리고 잔다’는 말이 있다. 실제 가장 큰 타격은 북한이 입게 될지 모른다. 백주대낮에 민간지역에 포탄을 퍼부은 것은 명백한 전범행위다. 몰래 천안함을 침몰시킨 것과 차원이 다르다. 불타는 연평도 사진은 우리 사회의 대북관(觀)을 완전히 바꾸어 놓았다. 북한은 국제사회에서 외톨이 신세가 될 수밖에 없다.

 이명박 정부도 쉽게 발 뻗고 잘 성 싶지 않다. 머지않아 위성사진이 도마에 오를 게 분명하다. 군의 장담대로 K9 자주포가 정확하게 반격했다면 상당수의 해안포가 걸레가 됐을지 모른다. 하지만 곡사화기로 바닷가 수직 절벽에 숨은 북의 해안포를 타격하기도 쉽지 않다. 만약 북한 해안포가 멀쩡한 것으로 드러나면 우리 사회는 또 한번 홍역을 피하기 어렵다. 그렇다고 강경대응이 대안은 아닌 것 같다. 해법은 스마트한 대응이 아닐까 싶다. 모든 정보자산을 동원해 도발 징후를 예측해야 산뜻한 대응이 가능하다. 이번에도 북 해안포의 포문이 열리고 포탄 쏘는 걸 미리 감지하지 못한 게 패착은 아닐까. ‘알아야 이긴다’는 오래전 포병 시절의 구호가 자꾸 생각난다.

이철호 논설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