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타봤습니다] 4억원대 ‘롤스로이스 고스트’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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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 15면

롤스로이스 고스트

1억5000만∼2억원 하는 벤츠 S클래스나 BMW 7시리즈를 타는 고객들은 그 다음에 어떤 차를 고를까. 소위 고급차(프리미엄 브랜드)라 부르는 벤츠·BMW·아우디·렉서스·재규어 등을 뛰어넘는 브랜드가 또 있다. 수퍼 럭셔리(초고가차)라고 부르는 마이바흐·롤스로이스·뮬산(벤틀리) 등이 대표적이다. 가격대는 3억원부터 시작한다. 방탄 등 특수 옵션을 달면 20억원을 호가한다. 이들 차량은 6m 전후의 긴 차체에 푹신한 시트와 호화로운 내장이 공통점이다. 최고급 스포츠카인 페라리·람보르기니 등과 가격은 비슷하지만 세단이라는 점에서 구분된다.

 이런 초고가차의 전 세계 시장 규모는 연간 1만여 대 수준이다. 금융위기 여파로 지난해에는 주춤했지만 올해 다시 회복세를 보이면서 연평균 10%대 성장이 예상된다. 중국·러시아·한국 등 신흥국가에서 판매가 급증하는 모양새다. 국내 시장 규모는 올해 80여 대에서 내년에는 100대를 돌파할 것으로 보인다. 4억원대인 롤스로이스 고스트 시승을 통해 초고가차의 호화로움과 성능을 알아봤다.

 ◆고스트는 어떤 차=영국 롤스로이스는 2000년 BMW그룹이 인수했다. BMW의 신기술이 접목된 첫 차가 2002년 출시된 팬텀이다. 롤스로이스의 중후한 전통이 그대로 재현됐다는 평을 받았다. 하지만 팬텀은 길이가 6m에 육박해 운전기사를 두고 뒷좌석에 타는 소파 드리븐 전용인 데다 가격도 6억원이 넘어 고객들이 한정됐다. 또 일반적인 세단 스타일에서 벗어난 높은 차체와 눈에 띄는 디자인으로 한국 시장에서는 그다지 빛을 보지 못했다.

 롤스로이스는 이런 고객들의 요구를 반영해 2006년 신차 개발에 착수했다. 팬텀보다 크기를 작게 하고 가격도 30% 저렴하게 설정했다. 주말에는 기사 없이 직접 운전을 해도 불편하지 않게 했다. 이름은 ‘고스트’로 정해졌다.

 고스트는 지난해 9월 첫선을 보였다. 부담스럽지 않은 디자인에 가격도 4억원대로 경쟁력을 갖춰 최고급 대형차를 타던 고객들이 속속 넘어왔다. 한국에는 올해 출시돼 20여 대가 넘게 판매됐다. 내년에는 40대 이상 팔릴 것으로 보인다.

 ◆놀라운 성능=고스트에는 6.6L 트윈 터보 V12 엔진을 달았다. 무려 570마력을 낸다. 에어 서스펜션 시스템은 민감하게 작동한다. 승객이 좌석 위치를 옮기면 움직임을 감지해 자동으로 차체를 조정한다.

 외관은 호화 요트에서 따왔다. 매끈하게 이어지는 표면은 정교한 조각을 연상케 한다. 높은 앞 부분과 긴 보닛, 짧은 앞쪽의 오버행(바퀴와 범퍼 사이의 거리), 날카로운 경사각의 운전석 기둥(A필러) 등은 전통적인 롤스로이스 디자인 요소다. 도어 열림은 여닫이 방식이다. 뒷좌석에 앉아 버튼을 누르면 전동식으로 문이 닫힌다.

 버튼 시동 스위치를 눌러 시동을 걸었다. 조용하지만 박력 넘치는 엔진음이 살짝 들려온다. 운전석에 앉으면 거대한 차체가 부담스럽게 느껴지지 않는다. 엑셀을 밟자 2.5t의 육중한 차체가 미끄러지듯 나아간다. 힘은 넘치지만 절제됐다. 몸이 젖혀지는 급작스러운 가속력보다는 힘을 제대로 배분해 안정감 있는 가속력이 이뤄진다. 승차감은 역시 부드럽다. 다소 출렁거리는 듯한 맛이 뒷좌석에서 편안하게 숙면을 취할 수 있을 정도다. 정숙성은 역시 수준급이다.

 실내는 넉넉하다. 팬텀 세단보다 400mm 짧지만 내부 공간은 비슷하게 한 설계 덕분이다. 인테리어는 피아노 블랙을 덧댄 원목과 베이지색 가죽으로 감쌌다. 시트와 내장 가죽은 모두 손으로 바느질을 했다. 촉감은 부드럽고 윤기가 흐른다. 계기판은 단순하다. 꼭 필요한 스위치만 달려 오랜만에 핸들을 잡은 오너도 어렵지 않게 각종 스위치를 조작할 수 있다.

 뒷좌석에 앉아 봤다. 높은 벨트라인으로 프라이버시뿐 아니라 안정감이 뛰어나다. 창문을 통해 내려다보이는 바깥세상은 또 다른 여운을 느끼게 한다. 카펫에 옵션으로 제공되는 양모 바닥 매트는 품격이 전해진다.

김태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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