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 세계 엘리트와 전쟁하듯 경쟁...전략적 사고와 두둑한 배짱 키워

중앙선데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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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3호 20면

MBA를 준비하는 이들이 빼곡한 학원강의실.화이트보드에 쓰여진 어지러운 기호들이 이들의 예측하기 어려운 미래를 닮았다. [중앙포토]

“왜 와튼스쿨 MBA에 지원하셨습니까?” 2007년 12월 중국 베이징(北京)의 한 사무실. 미국 펜실베이니아대 와튼 경영대학원의 토커스 칼릴 입학처장은 면접시험에서 이렇게 물었다. 당시 필자는 일간지(중앙일보) 기자 9년차였다. 경영과는 거리가 먼 경력에 적지 않은 나이, 교환학생 1년이 전부인 해외 경험 등 MBA 지원에 유리한 조건이라곤 찾아보기 어려웠다. 불안은 곧 현실이 됐다. 서류 전형에 붙은 학교는 딱 한 곳이었다. 급한 마음에 중국까지 비행기를 타고 날아갔다. 입학전형 면접에선 지원 이유에 대해 당당히 말했다. “기업을 바꾸는 의사 결정에 직접 뛰어들고 싶습니다. 경영 지식과 리더십, 도전정신을 배우겠습니다.” 그리고 2년의 MBA 생활에서 배운 것은 이 기대를 훨씬 뛰어넘었다.

외국 MBA, 이래서 좋다

미국프로풋볼(NFL) 쿼터백, 올림픽 출전 권투 선수, 이스라엘 출신 여성 저격수 등등. 와튼에서 기자 경력은 특이한 축에도 못 든다. 18~45세의 다양한 경력을 갖춘 학생들이 전 세계에서 모여들기 때문이다. 학생들의 다양성(diversity)은 토론 수업에서 진가를 발한다. ‘리더십’ 시간에는 미군 장교 출신이 아프가니스탄 파병 경험을 나누고 ‘글로벌 기업’ 수업에선 프랑스 학생이 와인 산업에 대해 열변을 토한다. 나는 삼성의 반도체 사업에 대한 토론을 주도하고 한국 기업의 지배구조에 대해 발표하기도 했다.

1학년은 살인적 스케줄의 연속이다. 첫 학기 내내 평일엔 하루 4~5시간 자면서 공부하고 주말은 고스란히 팀 과제 보고서를 작성하는 데 썼다. 간간이 취업 준비와 과외 활동도 해야 한다. 항상 공부가 부족해 시험 전날마다 LT를 받을까 전전긍긍하던 기억은 지금도 생생하다. LT는 와튼에서 가장 많이 듣는 말 중 하나다. 팀 과제를 함께 제출하는 ‘러닝 팀(Learning Team)’의 약자인 동시에 성적이 나쁜 10%(Low Ten percent)의 학생을 이르는 말이기도 하다. 학교 측은 모든 수업에서 하위 10% 학생에게 LT를 준다. LT가 일정 개수 이상이면 그 학생을 퇴학시킨다. 지난해에도 동기 800명 중 14명이 이런 이유로 학교를 그만뒀다.

교수들은 수업 시간에 무작위로 질문을 던져 학생들의 사고 능력을 평가한다. 이른바 ‘콜드콜(cold call)’이다. ‘기업 전략’ 수업 전날 ‘설마’ 싶어 준비를 건너뛴 적이 있다. 이게 웬걸, 수업 시작 직후 첫 타자로 지목돼 진땀깨나 흘렸다. 반면 교수가 한국의 금융위기 극복에 대해 강의할 때는 자신 있게 손을 들고 부연 설명을 하기도 했다.

무엇보다 미래 리더들의 공동체 의식에서 배운 점이 많았다. 이들은 자기 관리에 엄격한 반면 경험과 지식을 나누는 데는 주저함이 없었다. 어떤 친구들은 시험을 코앞에 두고 자선 파티 기획에 밤을 새웠고, 일부는 아이티 지진 성금을 모은 뒤 관련 수업까지 개설했다. 여기에 자극 받아 나도 아프리카 가나에서 비정부기구(NGO)와 함께 2주 동안 봉사 활동을 했다. 또 한국에 관심 있는 학생 30여 명을 모아 한국 기업들을 방문하는 프로그램을 기획하기도 했다.

지난 5월 졸업장을 손에 쥐니 정신 없이 보낸 시간들이 머리를 스쳐갔다. 수만 달러의 등록금과 2년의 시간을 썼고, 시험 준비와 진로 고민으로 셀 수 없을 정도로 불면의 밤을 보냈다. 돌이켜보니 얻은 것도 많았다. 멋있게 말하면 계량적 분석력, 단순하게 말하면 숫자 감각을 익혔다. 교수의 끈질긴 콜드콜 덕택에 전략적 사고와 효율적 커뮤니케이션을 배웠다. 봉사나 과외 활동을 위해 세계 곳곳을 누빈 경험은 글로벌 감각을 안겨 줬다. 물론 MBA를 졸업한다고 모두 다 억대 연봉의 길에 들어서는 것은 아니다. 일부는 원래 다니던 회사로 돌아갔고, 일부는 금융위기로 눈높이를 낮춰야 했다. 하지만 전 세계에서 온 엘리트들과 경쟁하며 자신을 채찍질한 경험 덕에 도전을 두려워하지 않는 든든한 배짱이 생겼다. 평생 남을 소중한 추억과 우정은 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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