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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속 이 사람] 윤응렬 … 가미가제 특공대원, 인민군 장교 후보자 …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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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7면

상처투성이의 영광
윤응렬 지음
황금알
528쪽, 1만8000원

책 제목이 1960년대식이다. 요즘 젊은이에게 다가서기 위한 읽을거리론 진부하다는 지적이다. 책 만듦새도 만족스럽지 않고, 문장도 좀 거칠다. 예비역 소장 윤응렬 장군(83·육사7기)의 한국전쟁 증언이라면 무게에 걸맞는 외피를 둘렀어야 옳았다. 아쉬움은 여기까지다. 한국전쟁 영웅의 한 명이자, 마하1(음속 돌파) 전투조종사(54년)이던 저자는 이 증언으로 노병의 소임을 완수했다. 한국전쟁 관련 공군 측 자료가 드문 형편이라서 더욱 그렇다.

 공사 교장·공군작전사령관을 지낸 그는 의외로 친숙한 인물이다. 64년 최무룡·신영균 주연의 영화 ‘빨간 마후라’의 배경이던 승호리 전투 당시 편대장이 그이다. 승호리 전투는 52년 1월 평양 승호리 철교를 폭파해 두 동강내는데 성공한 작전. 인민군 병참 루트인 이곳을 미 공군이 500회 이상 출격했으나 성공 못했던 요충지(157쪽)였다. 평양 출신 윤응렬은 베테랑 6명이 이끄는 F-51 무스탕 편대로 단 한 번 출격에 대성공을 거뒀다. 6·25 전쟁 초기 정찰기(T-6), 연락기(L-5)가 고작이던 공군의 전력을 고려하면 놀라운 전과다. 미아리를 밀고 들어오던 적 탱크를 향해 조종사가 손으로 폭약을 던지던 원시적 대응이 전부였다.

6·25 전쟁 때 출격을 끝내고 F-51 무스탕 전투기 앞에 선 윤응렬씨. 1951년 11월 무렵이다. [황금알 제공]

 승호리 전투로 능력을 인정 받은 한국 공군은 무스탕을 추가공급 받을 수 있었고, 그 역시 미 대통령 표창과 한국 공군총장 표장을 받았다. 승호리 전투는 6·25 당시 공군의 3대 작전이지만, 그는 351고지 작전에도 참가했다. 53년 3월 고지 탈환을 위한 공지(空地)협공 성공에 따라 38선 북방 설악산·속초 지역이 우리 땅이 됐다. 이 역시 공군 3대 작전의 하나다. 놀랍게도 그는 일제 가미가제 특공대원 출신임을 책에서 밝히고 있다.

소년 윤응렬은 태평양전쟁 말기인 44년 8월 일본육군소년비행학교를 나이 열일곱에 졸업했다. 비행학교는 10대 조종사 양성을 위한 단기 코스. 사고뭉치였지만 창공의 꿈을 꿨던 그는 졸업 뒤 전방 인도네시아 반둥에서 일제가 자랑하는 ‘97전투기’를 모는 조종사로 변신했다. 그러던 중 가미가제로 차출돼 일본 본토 이동 중 해방을 만났지만, 이후 삶도 드라마의 연속이다.

 해방 직후 “비행기를 타고 싶은 마음에”(74쪽) 인민군 장교를 양성하던 평양정치학원을 다니다 견디다 못해 월남을 결심했다. 육사 입교는 정일권(전 총리·당시 조선경비대 총참모장)의 권유 때문인데, 거물인 장택상 경찰청장이 신원보증을 해줬다. 『상처투성이의 영광』은 몇몇 현대사 증언도 주목된다. 1970년대 초 국산무기 개발 때 오원철 당시 청와대 경제2수석과의 의기투합에 따른 탱크 선정 뒷이야기 등이 그러하다.

 소소한 대목도 흥미롭다. 본래 조종사에게 붙여진 별명은 ‘산돼지’였다고 한다. 64년 영화가 히트하면서 빨간 마후라로 통칭됐다. 그럼 당시 쌕쌕이로 불렸던 전투기는 어떤 기종일까? 미그-15을 792대 격추시켰던 세계 첫 초음속 전투기 F-86을 말한다. 선택과 집중을 통해 핵심 대목에 지면을 할애했더라면 싶지만, 어디 첫 술에 배부를까?

조우석(문화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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