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득세 감세, 철회·조정해야” 응답 의원 102명 … 한나라당 내부서도 포퓰리즘 논란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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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세는 한나라당 ‘전가(傳家)의 보도(寶刀)’였다. 진보 정부에 맞서는 효과적 무기였다.감세는 또 ‘MB노믹스’(이명박 정부의 경제기조)의 상징이다. 18일 중앙일보가 한나라당 의원들을 상대로 전수조사한 결과(171명 중 146명 응답, 4명은 복수 응답)는 ‘한나라당=감세’등식이 성립하기 어렵다는 것이다. 의원 102명(68%)이 어떤 식으로든 소득세 최고구간에 대한 감세 방침을 변경하거나 조정해야 한다는 견해를 밝혔기 때문이다.

102명의 의원들(4명은 복수 응답)은 두 세목에 대한 감세 계획을 유보하거나 소득세에 대해서만이라도 감세안을 철회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반면 감세 기조를 유지해야 한다는 쪽은 소수였다(27명, 18%). 22일 열리는 의원총회에선 이런 입장들이 충돌할 걸로 보인다. <표 참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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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① 소득세 감세만 철회=이른바 ‘박근혜 안’이다. 박 전 대표는 15일 국회 기획재정위에서 “글로벌 금융위기를 거치면서 정부의 재정건전성이 급격히 악화됐고 소득불균형이 심화됐다”며 소득세 최고구간 세율을 내리는 계획은 철회하는 게 좋겠다는 뜻을 밝혔다. 이에 동조한 다수의 의원들은 “사회 양극화와 재정건전성을 고려해야 하기 때문”이란 논리를 폈다. 안형환 대변인은 “야당의 ‘부자감세’ 프레임을 깨야 한다”는 정치적 이유를 댔다. 한국노총 출신인 강성천 의원은 “노동자 입장에서 부유층이 세금을 좀 더 내는 쪽으로 가는 게 바람직한 만큼 소득세 감세는 철회돼야 한다”고 말했다.

‘박근혜 안’을 지지하는 두 축은 친박계와 홍준표 최고위원과 원희룡 사무총장 등 수도권 출신 의원들이다. ‘이명박 직계’로 불리는 김영우·백성운·조해진 의원도 포함됐다.

 ② 소득세 최고구간 신설=안상수 대표안이다. 현행 8800만원 이상인 소득세 최고구간을 ‘1억원 또는 1억2000만원 이상’으로 정하고 이 구간에 대해선 현행 최고세율인 35%를 매기자는 거다. 상당수 친이계 의원들이 공감하는데 이들의 논리도 박근혜 안 쪽과 유사하다. 김정훈 의원은 “‘부자정당이라 부자세금 깎아준다’는 야당의 논리가 먹히는 현실을 고려해야 한다”고 말했다.

김학용 의원은 “소득구간이 워낙 옛날에 만들어진 만큼 조정이 필요하다”고 했다. 이두아 의원은 “오랫동안 과표구간이 4개뿐이었는데 경제규모와 성장을 반영해 보다 합리적으로 세분화할 필요가 있다”고 주장했다. 조전혁 의원은 “명목소득은 계속 올라가고 실질소득은 안 올라가는 상황에 대비해 과표구간을 유연하게 움직일 수 있도록 해야 한다”고 말했다.

 ③ 소득세·법인세 감세 모두 철회=정두언 최고위원 안이다. ‘민본21’ 등 소장파가 지지한다. 친박계 정책통 유승민 의원도 이 진영이다. 김성동 의원은 “재정적자를 감안할 때 감세정책을 재고해야 한다”고 말했다.

윤석용 의원은 “소득세 감세 철회로 더 걷히는 세수는 5000억~6000억원 정도고, 법인세 감세 철회로 걷히는 세수는 3조원이나 된다”고 말했다. 소득세 감세만으로 재정건전성 제고에 큰 도움이 안 되는 만큼 법인세 감세 방침도 함께 철회해야 한다는 거다.

 송광호 의원은 “법인세를 감면한다고 기업들이 연구개발 투자하고 고용창출 한다고 보느냐”며 감세론자의 논리에 의구심을 나타냈다. 남경필 의원은 “법인세 과표 구간(현행 2억원)을 세분화해 중견기업과 중소기업은 감세해 주자”고 제안했다.

 ④ 감세 기조 유지=기존 당론이다. 지지자들 대부분은 친이계다. 친박계에선 성윤환 의원이 동조했다. 감세가 소비와 투자를 늘려 경제에 도움이 된다는 게 이들의 생각이다. 여상규 의원은 “지구가 한 시장인 상황에서 돈은 세율이 낮은 곳으로 흐른다”며 “감세는 단순히 국내 문제가 아니다”고 말했다. 박순자·유일호 의원 등은 정책의 일관성을 강조했다.

 ‘부자감세’란 표현이 틀렸다고 지적하는 이들도 있었다. 차명진 의원은 “부자감세가 아닌 국민감세”라며 “(다른 과표 구간에 대해선) 순차적으로 해주고 마지막에 남은 것”이라고 말했다. 그는 “표 때문에 그런다면 (국민이) 배신감을 느낄 것”이라며 “부자들에게 돈을 걷고 싶으면 이자소득세를 물리든지 다른 세원을 발굴하라”고 주장했다. 여상규 의원은 “민주당이 부자감세라는데 사실 부자감세는 김대중 대통령 때 이뤄졌다. 최고세율이 40%였는데 자기적용세율의 10%씩 인하해 40%는 4%포인트 내려간 반면 최저세율인 10%는 1%포인트만 내렸다”며 “이제 2%포인트씩 내리면 부자감세가 아닌 균등감세”라고 말했다. 정옥임 의원은 “세금을 안 깎아주면 돈 있는 사람들은 탈세·절세를 더 한다”고 주장했다.

 ◆당론 바뀌나=한나라당 내 감세 조정 목소리가 10명 중 7명꼴이라고 해도 곧 정책으로 확정되는 건 아니다. 당내에서 "포풀리즘으로 가자는 거냐”고 비판하는 기류가 있는 데다 당론 결정과 당·정 협의, 여야 협상 과정 등 몇 개의 산을 넘기는 일이 남아 있기 때문이다.

 우선 어떤 방식으로 당론을 바꿀지부터 정해야 한다. 소득세·법인세 감세가 당론이라면 당론 변경 과정을 거치는 게 맞다. 그럴 경우 재적 3분의 2선인 171명 중 114명이 동의해야 한다. 현재 ▶소득세·법인세 감세 철회(18명) ▶소득세만 감세 철회(55명) ▶소득세 최고구간 신설(29명) 등 감세 조정안에 모두 102명(중복응답 4명)이 찬동하고 있다. 당론변경선에 육박하는 수치다. 문제는 그러나 어느 안도 단독으론 당론을 바꾸기엔 역부족이란 데 있다. 당 지도부가 ‘운영의 묘’를 발휘할 여지가 있다는 얘기다. 김 원내대표가 “당론변경 절차를 밟을지, 절충안을 지도부에 위임할지, 결정을 유보할지 등은 아직 정해지지 않았다”고 하는 이유다. 이런 과정을 거쳐 당·정의 입장이 정해지더라도 변수는 남았다. 여야 협상 과정이다. 한나라당은 지난해 법인세 감세 기조를 유지하려고 했으나 예산안 협상 과정에서 야당의 요구를 수용해야 했다.

고정애·이가영·허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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