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 노트] 10년 준비한 방통위, 2년 만에 흔들리나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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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성희 기자

방송콘텐트 진흥업무를 둘러싼 방송통신위원회와 문화체육관광부의 힘겨루기가 극한으로 치닫고 있다. 청와대까지 조정안 마련에 나섰지만 쉽지 않을 전망이다. 그간 방통위와 문화부가 나눠가졌던 방송콘텐트 업무를 문화부에 넘겨주면서, 콘텐트 진흥을 문화부로 일원화한다는 것이 최근 논란의 핵심이다.

 만약 이렇게 된다면 문화부로서는 숙원사업을 달성하게 된다. 하지만 방통위는 충분한 공론화를 거치지 않은 밀어붙이기식 조정이 될 것이라며 크게 반발하고 있다. 출범 2년 만에 방통위의 위상이 뿌리째 흔들리는 데 대한 불만이다.

 사실 방송콘텐트를 둘러싼 둘의 갈등은 오래됐다. 정인숙 경원대 신문방송학과 교수에 따르면 “2000년 방송법에 ‘방송정책에 대한 기본계획을 방송위와 문화부가 합의해야 한다’는 조항을 둔 후, 양 부처의 갈등은 번번이 정책의 지연과 비효율성을 낳았다.” 이처럼 “부처이기주의에 매몰됐던 역사를 청산하고 방통산업을 육성한다는 뜻에서 출범한 것”이 바로 방통위다. 10여 년 논의 끝에 콘텐트 진흥과 규제를 동시에 맡는 막강한 국가기구로 출범했다.

 이런 배경에서 정부 스스로 방통위의 설립목적을 부정하는 것이 아니냐는 지적이 나오고 있다. 만약 방통위를 사업자 규제기관으로 둔다면 굳이 정통부와 방송위를 통폐합한 근거를 찾을 수 없기 때문이다. “자칫 방통위는 방송 없는 통신위원회가 되고 말 것”(양문석 방통위원)이라는 우려도 나온다.

 보다 근본적인 문제는 이처럼 콘텐트 진흥(문화부)과 플랫폼 진흥(방통위)을 분리하고 방송사업자를 콘텐트 제작자라기보다 플랫폼 사업자로 규정하려는 방식에 있다. 방통융합 시대를 거스르는 발상이다. 스마트TV나 아이폰, 태블릿PC에서 보듯 융합형 콘텐트는 플랫폼과 따로 떼어 생각할 수 없다. 구글·애플·디즈니 등 세계 미디어 강자들이 ‘네트워크+플랫폼+콘텐트’ 개발에 사활을 거는 이유다.

 방송사업자들도 시어머니만 늘고 업무의 효율성은 떨어질 것을 우려하고 있다. 실제로 IT업계에서는 정통부 폐지 이후 방통위·지경부·문화부 등 시어머니만 늘었다는 하소연이 쏟아지고 있다.

 물론 부처간 업무 중복은 바람직하지 않다. 집중을 통한 효율화가 중요하다. 그러나 부처간 파워게임으로 해결할 일이 아니다. 방통융합의 미래와 전략에 따른, 충분한 논의가 필수적이다. 방송을 포함한 미디어 시장은 하루가 다르게 변해가고 있는데 방송을 바라보는 정책 당국은 제자리에 멈춰있는 것 같아 안타깝다.

양성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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