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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스탄불서 배우는 공존의 기술

중앙선데이

입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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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2호 30면

“위스퀴다르 머나먼 길, 비는 내리고(Usku dar’a gideriken aldida bir yagmur)…”.
지난달 말 한국과 터키 기업의 기술협력 현장을 취재하기 위해 이스탄불을 찾았다. 해 떨어질 무렵 구시가지의 숙소로 발걸음을 옮기는데 블루모스크와 아야소피아 사이에서 귀에 익은 노래가 흐른다. 한국전쟁에 참전한 병사들을 통해 전해진 터키 민요다. 위스퀴다르는 이스탄불에서 보스포루스 해협을 건너 마주보는 지역이다. 터키 사람들은 한국인과 비슷한 점이 많다. 성질이 급하면서도 정이 많고, 길고 찬란한 역사를 자랑하지만 전쟁(제1차 세계대전과 한국전쟁)의 후유증으로 고생했다. 최근 급속한 성장을 이루고 있다는 것도 공통점이다. 하지만 한 가지 한국과 다른 게 있다. 관용의 정신이다. 이를 대변하는 곳이 아야소피아다.

김창우 칼럼

내부가 2만1000개의 푸른 타일로 덮여 있는 블루모스크는 정식 명칭이 술탄 아흐메트 카미다. 카미는 터키어로 모스크(이슬람사원)를 의미한다. 술탄 아흐메트 1세가 1600년대 초반에 지은 세계 최대 규모의 이슬람 사원이다. 바로 옆에는 비잔틴 황제 유스티아누스가 6세기에 지은 아야소피아가 자리잡고 있다. 비잔틴 제국 시절 ‘성 소피아 성당’이라는 이름으로 그리스 정교의 총본산 역할을 했다. 하지만 이스탄불을 점령한 메흐메트 2세는 아야소피아를 부수지 않았다. 내부의 벽화를 회칠로 덮고 이슬람 사원으로 썼다. 지금은 박물관이 됐다. 두 문명의 화합을 상징해 건물 내부의 절반은 기독교 성화를 복원하고, 절반은 지금의 이슬람 문양을 유지할 예정이라고 한다.

아시아 대륙의 서쪽 끝에서는 기독교와 이슬람교도 화해를 하는데 동쪽 끝의 풍경은 정반대다. 한국에서는 보수와 진보, 구세대와 신세대가 나뉘어 사사건건 대립하고 있다. 상대방의 의견은 들을 생각도 없다. 그제 막을 내린 G20 서울 정상회의에 대한 평가도 마찬가지다. 한편에서는 G20 포스터에 쥐를 그렸다. 인터넷에는 “경제효과가 400조원이 넘는다니 내 몫 1000만원을 받으러 청와대에 가야겠다”는 글이 큰 호응을 얻는다. 반대 편에서는 “국격 상승의 전기가 됐다”고 강조한다.

솔직히 400조원 운운은 너무 심했다. 한국무역협회 산하 국제무역연구원은 지난달 초 G20 정상회의의 경제 효과를 2667억원으로 추정했다. 이 규모는 ‘코리아디스카운트’가 사라져 수출이 증가한다는 이유로 20조~30조원까지 늘었다. 이달 들어서는 “지난해와 올해 G20 국제 공조가 없었다면 세계 경제의 침체로 수출이 줄어 실업자가 200만 명 더 생겼을 것”이라며 419조원까지 커졌다. 한국무역협회 측은 “충분히 합리적으로 추산한 규모지만, 숫자만 기억하는 국민 입장에서는 혼란스러울 수 있다”고 말했다. 하지만 헷갈릴 것을 알면서 굳이 대공황 같은 심각한 경제위기 상황에 비교해 경제 효과를 ‘뻥튀기’한 이유를 알 수 없다. 우리나라의 한 해 국내총생산(GDP)이 1000조원 안팎이다. 400조원 운운하니 비아냥을 듣는 것 아닌가.

G20의 성과나 의장국으로서 한국의 역할을 폄하할 이유는 없다. 이번 경제위기가 선진국에서 시작되자 G7에 신흥국을 더해 만든 것이 G20이다. 선진국과 신흥국의 공동 대응이 없었다면 상황은 훨씬 나빠질 수도 있었다. 게다가 지금까지 다섯 번 열린 G20 정상회의 중 G7이 아닌 국가에서 열린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개인적으로 만난 외교통상부의 실무급 직원은 “G20 서울 회의 유치 후 한국의 위상이 올라간 것을 피부로 느낀다”고 말했다. 그의 체험담이다.

“몇 년 전만 해도 국제회의에서 외국 장관들과 면담을 잡는 것 자체가 쉽지 않았다. 자기들끼리만 모였다. 우리는 무슨 얘기를 했는지 한마디라도 귀동냥을 하느라 바빴다. 그런데 G20 의장국이 되자 달라졌다. 자국의 입장을 설명하고 지지를 부탁하기 위해 대통령·장관과 만나게 해달라는 외국 대표단의 요청이 빗발쳤다. 이런 영향력을 유지할 수 있을지는 앞으로 우리가 하기 나름이겠지만 지금까지만으로도 상전벽해다.”

터키는 이슬람 국가면서도 유럽연합(EU) 가입을 추진하고 있다. 이슬람교와 민주주의가 공존을 실천한 덕이다. 선진국 진입을 노리는 한국도 이젠 목에 힘을 뺄 때가 됐다. 정부가 먼저 나서야 한다. 포스터에 쥐를 그렸다고 구속영장을 신청하고, 특별법까지 만들어가며 1인 시위까지 봉쇄한 것은 지나쳤다. 사람도 아닌 나라에도 격이 있다는 말 자체가 마음에 들지는 않지만, 증오와 비아냥은 ‘국격 상승’에도 도움이 되지 않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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