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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쎄울’에서 ‘서울’로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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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8면

김정욱
워싱턴 특파원

기자는 ‘쎄울’을 기억하는 세대다. 1981년 9월 후안 안토니오 사마란치 국제올림픽위원회(IOC) 위원장은 독일 바덴바덴에서 열린 IOC 총회에서 88년 올림픽 개최지를 최종 발표했다. 서울일까, 일본의 나고야일까, 가슴 졸이던 순간 그가 말했다. “쎄울, 꼬레아” 그리고 이어지는 한국대표단의 환호성. 갓 중학교에 들어간 나이로 TV를 지켜보던 기자는 ‘쎄울’을 서울의 멋진 영어 발음쯤으로 이해했다. 영어시간에 멀쩡한 ‘서울’을 ‘쎄울’로 발음하는 친구들이 있을 정도였다. 서울 올림픽이 우리나라를 세계에 알리는 데 얼마나 큰 공헌을 했는지는 새삼 언급할 필요도 없을 것이다.

 백악관 기자단의 일원으로 버락 오바마 미국 대통령의 아시아 순방을 동행 취재하면서 오바마가 서울을 언급할 때마다 아무것도 아니라고 느끼면서도 조그만 흥분이랄까, 마음속에 물결이 일었다. 오바마는 ‘쎄울’이 아니라 한국 사람들과 똑같이 ‘서울’을 ‘서울’로 또렷하게 발음했다. 인도에서, 인도네시아에서 기자들의 질문을 받을 때마다 “서울 G20 정상회의에서 머리를 맞대고 논의하겠다”고 말했다. 라엘 브레이나드 재무차관은 ‘서울’뿐 아니라 자신이 최근 G20 사전회의차 방문했던 ‘경주’의 발음도 정확하게 했다. 미국 사람들만이 아니었다. 인도의 만모한 싱 총리도, 인도네시아의 수실로 밤방 유도요노 대통령도 “서울에서 다시 만나자”고 했다. 가는 곳마다 현지 TV와 신문들은 서울 G20 정상회의를 비중 있게 보도하고 있었다. 아마 다른 G20 참가국들의 상황도 비슷했을 것이다.

 서울이 세상에 많이 알려진 것 같지만, 반드시 그렇지도 않다. 워싱턴에서 만난 미국인들 중 서울을 방문했던 경험을 가진 사람들은 외교관이나 교수를 빼고는 군인 출신뿐이었다. CNN의 베테랑 백악관 출입기자 에드 헨리는 “지난해 오바마가 방문했던 것에 이어 이번이 두 번째 서울 방문”이라고 말했다. G20 정상회의가 아니었다면 그가 서울을 방문할 일은 없었을 것이다. 서울이 어떤 도시인지 아는 사람은 더욱 드물다. 8년 전 일이긴 하지만 미국 연수 시절 친해진 미국인 가족에게 “서울에 놀러 오라”고 했더니 “그 도시엔 맥도날드가 있느냐”고 물었다. 그러다 이번에 서울에 내려 호텔로 향하는 버스 안에서 뒷자리의 백악관 공보실 여직원들이 하는 말을 들었다. “서울은 너무 편해. 호텔 시설도 최고야.” 공항 출입국 수속과 보안검색에 2시간 이상을 허비하고, 갑자기 끼어드는 차량들 때문에 연거푸 경적을 울려대야 했던 인도와 인도네시아의 경험이 이들에겐 더 큰 대비가 됐을 것이다.

 첫 G20 정상회의를 계기로 서울은 이제 명실공히 서울이 된 느낌이다. 전 세계의 장삼이사(張三李四)들도 서울을 더 많이 알게 될 것이다. 어떤 모습으로 알려질지는 이제 우리들의 몫이다. 당장 회의 내용과 성과는 둘째치고, 승용차를 놔두고 지하철과 버스를 이용한 서울 시민들의 모습만으로도 우리는 자긍심을 느낄 만하다. 서울은 이제 아무것도 아닌 도시가 아니다.

김정욱 워싱턴 특파원